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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Apr 17. 2020

씨앗의 인내

서슬이 시퍼런 어둠의 터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숨을 조여 오는 검은 공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팔을 어디로도 뻗지 못하고

허리를 요만큼도 필 수 없이

갑갑하게 갇혀,

한없이 추락의 눈물을 흘리는 나날들


그러나 어느 날,

드디어

씨앗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푸르른 잎과 줄기, 거침없는 몸짓으로 어깨를 편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내

씨앗은 존재의 의미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진다홍 꽃잎이 바람을 타고 출렁인다


여전히 씨앗은

컴컴한 땅 속의 인내를 견뎌야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는 더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발 밑에 꿈틀거리며 숨어있던

푸른 생명력,

물과 빛과 시간을 담아낸 인내,

그의 고운 진다홍 날갯짓은


어느덧,

누군가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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