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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Jan 19. 2024

날아보자 캐나다 겨울로

5년 전 그날


브런치 북을 시작하며 양해를 먼저 구합니다. 지금부터 연재할 글들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주관적 경험담입니다.
실제 거주하는 분이나 이민 가신 분이 느끼고 경험한 부분과 상이할 수 있으니 그 점 유념하시어 너그러이 이해하시고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 비행기는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착륙하고 있습니다. “

도착을 기뻐할 새도 없이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에 온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하얗게만 보이는 겨울 왕국으로의 여행이 설레고 흥분돼야 할 시점부터 우리의 난관은 시작되고 있었다. 13시간 비행 내내 잘 먹고 잘 자고 잘 버텨내던 아이들은 도착이 가까워오자 시차의 노예가 되어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 그나마 잘 버티던 큰 아이마저 기절상태가 되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멈추며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승객들은 웅성대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워도 반응이 없는 두 아들과 흙빛으로 변해가는 내 얼굴. “얘들아 좀 일어나라! 캐나다에 다 왔단 말이다!!”


나란히 자기 팔을 베고 누워 기절 상태의 아이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있으니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목소리는 커져갔다. 지켜보다 안쓰러웠는지 급기야 남자 승무원 한분이 다가와 같이 아이들을 깨워주었다 “얘들아~ 내려야 해! 엄마 혼자 힘드시다 어서 일어나~”  승무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일으켜 눈을 반만 뜬 채로 걸으며 징징대는 아이들을 끌고  컨베이어 벨트까지 힘들게 왔건만 짐이 안 나온다? 다른 승객들은 거의 다 나가고 한산한데 우리 짐만 안 보이는 난감한 상황. 큰 아이와 함께 비행 편을 다시 확인하고 짐이 나오는 위치를 계속 확인하며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니다 여기저기서 하나씩 발견했다. 다행히 다 찾았지만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입국 전부터 이렇게 힘들어서야. 다행히 입국 심사는 별문제 없이 금방 통과해 한시름 놓기 바쁘게 Airbnb 주소 확인과 우버 예약을 하려 보니 핸드폰이 먹통이다.


물어볼 곳도 없고 도와줄 이도 없는 상황. 할 수 있는 건 공항 의자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재부팅할 수밖에 없었다. 배고프다 춥다 심심하다를 외치며 징징대는 아이들을 달래며 수십 번을 껐다 켜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핸드폰을 부여잡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우버부터 예약했다. 남편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걱정이 되었는지 한국은 새벽일 텐데 바로 대답이 온다. 남편에게 벌써부터 힘들다며 잠시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전하고 있는데 우버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도착. 아이들과 우버 기사가 알려준 장소를 찾아가 보니 순식간에 다가와 우리 앞에 서는 승용차 한 대. 젊은 청년 한 명이 친절한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1년을 마치고 맞이한 첫겨울 방학, 두 달의 긴 시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한 건 모든 엄마들의 고민이지만 우리 집에는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건 바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다섯 명이 뛰어다니는 윗집의 어마어마한 층간소음 문제였다. 방학 내내 집에서 아이들과 고통받을 생각을 하니 당장이라도 도망갈 곳을 찾고 싶었고 마음을 읽었던 남편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이사 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 여유가 생겼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영원히 없을 수 있어서 그래. 돈 여유가 될 때 너만 할 수 있으면 아이들 데리고 한 달 살기를 가보는 거 어때?”


여행준비를 하던 일 년 전, 결혼 10주년 기념과 큰 아들 초등 입학 기념으로 다녀온 미국으로의 2주 여행. 가족 모두 너무 즐거웠던 추억으로 가득했던  장면들이 떠올랐고 2019년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많이 춥지 않아 눈을 볼 수 없었다. 따뜻한 동남아가 아닌 아메리카로 다시 가고 싶어 졌고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였던 캐나다. 주변에서는 아직 어린아이 둘과 너무 멀고 추운 곳으로 왜 가냐며 만류하기 바빴지만 모든 결정을 나에게 맡겨준 남편. 사실 이민에도 관심이 있었고 캐나다행에 응원을 보탠 지인을 믿고 망설이지 않고 내 뜻대로 결정했다. 여행 준비와 검색만으로도 색다른 즐거움과 도파민 폭발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토론토 CN tower 앞에서




우버 기사는 친절하게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캐나다의 좋은 점을 마구 이야기해 주며 여유롭게 눈 위를 달려 목적지를 향해 운전을 했다. 그와 달리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지는 않을지 처음 와본 나라인 데다 외국인과 가까이에 앉아있으니 바짝 긴장되어 여유롭게 대화할 수 없었다. 예의 없어 보이지 않으려 미소를 띠며 짧게 대답만 겨우 하고 있으니 부끄럽긴 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엄청나게 쌓여있는 눈과 우리나라 아파트 외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신기했다. 어느새 도착한 숙소는 한적하고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들 중 하나였고 그 마을 중간쯤에 위치 한 곳이었는데 집들 모양과 색이 다 비슷해 보였다. 친절한 우버 드라이버는 정확한 집의 위치를 알려주며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 나 대신에 우리의 짐들을 1층 문 앞까지 내려주고 “캐나다에서 좋은 추억 많이 쌓고 가길 바래!”라며  매너 있는 멘트를 날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캐나다에서 받은 첫 친절에 기분이 너무 좋아진 것도 잠시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숙소 주인이 보낸 메시지대로 도어 근처에서 열쇠는 찾았는데 문이 열리지가 않는다? 왜 캐나다는 도어록이 없는 거야!

날도 추운데 아이들과 달달달 떨며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친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Hey, Can I help you?" 천사로 보이는 아저씨가 옆집 문을 열고 다가와 간간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며 친절히 문 여는 법을 알려주셨다. ”Thank you very much!!"를 셋이서 여러 번 합창하며 허리를 굽혀가며 인사하니 쿨하게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벌써 두 번이나 받은 캐나다인의 친절. 아이들은 마냥 신나는 목소리로 “엄마! 캐나다 사람들은 다 친절한가 봐!” 이 정도면 시작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입국할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아이들과 기분 좋게 숙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AIrbnb로 예약한 토론토의 숙소 외관과 거실 내부



현관에 들어서자 신발부터 벗으려는 아이들. “얘들아, 여기 카펫 발판 있지? 여기에 발을 털고 신발 신고 들어가는 거야!”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여기도 미국 같네? 왜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집이 더러워지잖아!” 신발을 신고 들어가며 구시렁댄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거야. 대신 신발을 잘 닦고 들어가니까 괜찮잖아” 1층은 거실과 부엌이 넓게 펼쳐져있는데 아무도 없으니 아이들은 신나서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구경을 한다. 뛰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고 큰 짐들을 들어 2층 우리가 머무를 방으로 올라갔다.


3층짜리 건물에 우린 2층의 방 2개 중 하나를 써야 했다. 큰 킹사이즈 침대 2개가 있고 딸려있는 화장실도 있는 방. 바닥의 마루는 곳곳이 썩어있었고 카펫으로 덮여있는 난생처음 보는 환경에 난감해하고 있는데 “엄마 밖에 나가자 눈이 많아! 눈싸움하고 놀자!” 아깐 비행기에서 그렇게 안 일어나더니 눈을 보니 배도 안 고픈가 보구나. 잠시 엄마 숨좀 돌리게 기다려보라니 어느새 티브이부터 켜보는 아이들


토론토에서 아이들과 숙박했던 방, 사진 상으로는 깔끔하고 편안한 분위기



잠시 쉬다 배가 고파졌는지 밥 먹자고 난리인 아이들. 아직 한창 낮인데 캐나다까지 와서 아이들과 숙소에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멀지 않은 곳에 쇼핑몰이 있다고 하니 우버를 불러 가보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길을 몰라도 친절한 우버가 미리 지정한 예약 장소로 데려다 주니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기 너무 편했다. 큰 쇼핑몰을 구경하며 발견한 식당에서 피자를 사달라 성화인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 피자부터 시켰더니 둘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이렇게 배고픈데 어찌 참은 건지.


쇼핑몰이 생각보다 커서  옷부터 액세서리, 식당까지 다양하게 즐비해있어 아이들과 즐겁게 구경하다 우리 가족의 최애인 서점을 발견! 캐나다를 다니며 자주 갔던 서점으로 어디 가든 볼 수 있었던 ‘Indigo'였다. 넓고 다양한 책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데다 서점 한쪽에는 스타벅스까지! 완전 내 스타일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은 해가 저물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 토론토에서 2박 3일을 보내며 가장 힘들었던 건 시차적응이었다. 워낙 잠이 없기도 하고 엄마 따라 잘 움직이는 큰 아들은 나름 잘 극복해 줬는데 둘째는 어린 데다 가족 중에 잠을 오래 자는 편인 아이라 한국 저녁시간만 되면 기절모드여서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짐을 지고 어린 둘째를 이고 지고 다녀야 했다. 이만하면 숙소에 있어도 될 것 같다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역마살이 잔뜩 끼어있는 엄마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쉰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다녀야 즐거운걸. 엄마랑 다니는 여행이 즐거운 건지 놀러 다니는 게 즐거운 건지 항상 기분이 좋고 신이 난 아이들 덕분에 더 힘을 내서 다닐 수 있었으리라


아이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힘이 들고 피곤하다. 아이들은 즐거워도 준비하고 이동하며 아이들 먹이랴 챙기랴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건 부모다. 여행을 나오는 순간부터 머릿속과 가슴속에서는 화산이 터지고 귀에서는 피가 흐르며 정신세계는 피폐해져도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게 부모마음 일 거다. 아마 친구들과의 여행이나 남편과 단둘이 다닌 여행이 그리 힘들다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한동안 들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고 정신이 없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즐겁고 재미있었던 경험담을 수시로 쏟아낸다. 그런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해서 다시 여행할 힘을 주는 것 같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과 추억들은 가득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부모의 행복이 아닐까.


자 이제, 본격적으로 토론토 여행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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