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차가운 공기가 떠올린 추억의 단상들
어제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새벽 루틴을 위해 눈을 뜨고 흐리기만 한 창밖을 보며 일기예보가 틀려서 눈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침을 깨워 줄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돌아서니 창밖으로 펑펑 내리는 눈
내 예상은 틀렸고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좋은 환경이라 학교에서 배웠었다.
다양한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피부로 미세한 온도의 차이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날짜가 지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와 꽃들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웠던 시절 추운 날씨도 눈이 오는 것도 싫지 않았다.
바뀌어 다가오는 날씨들에 적응하며 사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어른이 되고 눈이 내리면 기쁘고 반갑기보다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동할지 걱정되고 아이들을 데리고 걷는 것도 쉽지 않고 운전은 더 힘들다는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면서
추위가 찾아온다는 예보만 들어도 몸이 시린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눈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분위기도 최고인 배경이 되어준다.
눈이 아름답도록 시린 느낌을 받은 건 2006년에 방영했던 이완, 박신혜 배우가 연기한 ‘천국의 나무’란 드라마였다.
아직 미혼이라 연애감정이 몽글거리던 시절 애타는 로맨스 이야기들이 그저 흥미롭던 시절
2003년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며 유명했던 드라마 ’ 천국의 계단‘ 후속작 같은 느낌의 드라마의 제목과 배우들
개인적 취향인 평생 겪어보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야기라 좋아했지만 설원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눈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마음들이 너무 애달프게 느껴졌었다.
화나고 원망스럽고 속상한 마음을 담아 남자 주인공이 하얗고 차가운 눈을 맨발로 밟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다 얼어버리는 듯했다.
90년대 눈과 관련된 영화라면 ‘러브레터’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영화 제목보다 “おげんきですか。 わたしはげんきです。 “ 대사로 더 잘 기억되는 영화
넓게 펼쳐진 설원 위에서 여자 주인공이 크게 허공을 향해 마음을 담아 외치던 대사
그렇게 여기저기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다니는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예능 프로에서도 유행어로 많이 쓰였었다.
겨울이라는 단어보다 얼음이라는 키워드가 더 잘 어울렸던 영화 ‘가위손’
손대신 날카로운 가위가 달린 창백한 얼굴에 남자 주인공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아름다운 소녀를 사랑한 슬픈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큰 얼음을 가위손으로 손질하던 장면은 마치 눈을 만들어 뿌려주는 듯한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었고
눈처럼 날리는 얼음들 아래서 행복해하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러고 보니 왜 눈은 이렇게 아프고 슬픈 사랑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걸까
보기엔 아름답지만 차갑고 시린 느낌을 심리로 묘사하기 때문일까?
좋아하는 영화 몇 편 을 제외하고 즐겨 본 편이 아닌 성향 탓인지 보지 못한 영화들이 많지만
유명한 대사와 장면은 많은 곳에 접하다 보니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나 보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때 이런 영화 한 편 다시 보는 건 어떨까
어린 시절 눈하면 공포스러웠던 대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동화책 속에 존재했지만 무서웠던 그 이름! 카이를 잡아간 ‘눈의 여왕’이었다.
거울 조각이 박혀 성격이 변해버리고 눈의 여왕에게 잡혀간 주인공카이.
그런 친구를 구하기 위해 여주인공 게르다는 온갖 시련을 견디고 카이를 되돌린다.
카이를 놔주지 않기 위해 저지르는 눈의 여왕의 만행이 어린 마음에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상상하는 걸 좋아해 각종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던 시절이라 실제 존재해서 다가올 것 같은 상상만으로도 오싹오싹했다.
이번 겨울 방학에 아이들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개인적으로 겨울은 아토피가 시작되고 심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아주 심한 아토피는 아니지만 전신의 소양감(pruritus, 간지럼증)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편이다.
가장 힘든 신체 부위는 단연 ’ 손‘이다.
일상생활에서 유독 손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기 때문일 거다.
코바늘 같은 바느질도 수시로 하는 편이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기도 하고
식사 준비나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 모두 손을 써야 하는 일 투성이다.
잠시의 휴식 시간 없이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보니 손을 사용하는 빈도가 꽤 높은 편이다
피부가 안 좋다고 손을 안 쓰거나 장갑을 끼고 모든 걸 하긴 어려운 데다 맨손으로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질 않은 일들이 있다 보니 상태가 악화되는 일이 다반사다.
날씨가 추워지고 건조함이 점점 심해지면 손의 피부상태도 기가 막히게 계절과 온도를 탐지해 변화한다.
손의 피부의 얇게 덮인 세포단위로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는 듯하게 느껴진다. 갈라지고 벗겨진 살들은 고통스럽고 아프기 그지없다.
손 씻기마저 병적으로 하다 보니 이 또한 문제를 키우는 건가 싶다.
손을 안 쓸 수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연고를 조금 바른 뒤 방수 밴드를 바르는 것이 끝이다.
어떤 병원에서는 최대한 손을 안 쓰고 수분 함량이 높은 크림 많이 손에 바르고 면장갑을 끼고 생활하라고 말씀하시는 피부과 전문의 선생님도 계셨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특히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면 수시로 손 가는 일이 많다 보니 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하루종일 핸드크림을 끼고 계속 바르고 있으면 웬만큼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손을 쓰다 보니 녹록지 않다.
겨울이 오면 그저 빨리 이 추위가 빨리 지나가길 마음속으로 빌며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곤 했다.
추위를 피하려고만 하거나 눈이 오는 상황을 부정하기보다
원하던 원치 않던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소망하는 겨울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