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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Jan 10. 2021

퇴근길, 사진 속 그 장면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면

특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① 모로코의 페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대중 매체 속에서 우연히 접한 장면에 꽂혀 오랜 시간 가슴속에 품어 온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나에겐 모로코 페스의 가죽 염색장이 그러했다. 수많은 염료의 알록달록한 예쁜 색깔 때문이 아니라, 팔딱팔딱 뛰는 산 현장에서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과거 언젠가 만난 페스 염색장의 사진 한 장이 날 모로코로 이끌었다.



페스는 13~14세기 메리니드 왕조의 수도로서 전성기를 이룬 대규모 이슬람 도시였기에, 역사가 오래된 왕궁, 모스크와 대학교 등이 남아있다. 또한 구시가지 ‘메디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9,600개나 되는 세계 최대의 미로가 있어 활기 넘치는 아랍 수크의 이국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무려 천 년에 걸쳐 이어왔다는 가죽 염색 공장 ‘테너리’는 바로 이 정신없는 미로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지독한 가죽의 악취를 막기 위해 민트 잎을 코에 댄 뒤, 염색장 작업 모습을 위에서 한눈에 보기 위해 몇 개의 계단을 올랐다. 이제 드디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장면과 실제로 마주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일까. 오랫동안 평평한 2차원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풍경 속에 뛰어 들어가 생생하게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움직임을 느끼며 오감이 자극받는 것. 사진 속에서는 갈색 통에 담긴 빨강, 초록, 파랑의 형형색색 염료들이 어우러져 이국적으로만 보였지만, 실상은 민트 잎으로 코를 막아야 할 만큼 지독한 악취와 일꾼들의 땀 냄새, 40도 가까이 되는 더위와 뜨거운 태양 볕을 견뎌야 하는 고단한 삶의 현장임을 알게 되는 것.  



그러나 예상과는 조금 달랐고 현실을 깨달았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장면을 직접 만나서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여행 중 내 삶의 기본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죽기 전에 후회가 남지 않는 삶’. 물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기에 기회가 닿는 범위에서겠지만, 그 기회도 어느 정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을 풀어야 할 숙제처럼 그것을 갈망하며 불완전하게 살았을 것 같다. 가우디의 성당과 우유니 사막을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해서, 일만 하고 사는 현실이 더 불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버킷리스트에 있던 장소들을 하나씩 지워 가며 여행을 마칠 때쯤, 성취감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만족감과 여유가 생긴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죽기 전에 내 삶을 떠올릴 기억들은 해야 할 일들을 했던 기억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기억일 것이며, 안정을 선택해서 안락을 가졌던 기억이 아니라, 도전을 선택해서 성취를 얻었을 때의 기억일 것이다." - 제갈현열 (작가)  



죽기 전에 “일을   많이 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우연히  여행지의 사진  장이  가슴을 오랜 시간 뛰게 한다면,  갈증을 해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어떨까.


+ 이제 나는 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모두 마쳤다. 내일은 거의 4년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어 출근하는 첫 주이다. 내 인생의 큰 프로젝트와도 같았던 세계 여행을 하면서 갈증을 해소하고 맘껏 즐겼으니,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 2017년 6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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