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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Jan 17. 2021

퇴근길, 갑을 관계에 지친
하루였다면

특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②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섬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유명한 낭만적인 야경도 화려한 프라하성도 아니었다. 바로 2015년 세계 동물원 순위 4위에 랭크되었다는 ‘프라하 동물원’이었다. 얼룩말과 기린이 사는 공간은 사바나 초원처럼 넓었고 나무와 풀도 무성해서, 동물들이 원래 자연 속에서 살던 방식 그대로 편히 지내는 것 같았다. 그 고요한 분위기에 관람객들도 마치 갤러리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 차분히 움직였다. 그동안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 개와 답답한 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들을 주로 보아왔기에 ‘동물이 사람과 잘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에콰도르의 서쪽에 위치한 섬, 다윈의 진화론으로도 유명한 갈라파고스섬은 ‘사람이 동물과 잘 어우러져’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바로 이 땅의 진짜 주인은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진정한 동물의 왕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을 숙지해야 한다. 일단 모든 관광객은 환경 보호와 간접적으로 관광객 수를 제한하기 위한 비용으로 약 120 달러를 지불해야 했고, 동물을 만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그것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동물들은 사람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길 한 복판에 벌러덩 누워있는 바다사자와,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 스르륵 발 밑에 자리 잡은 이구아나는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였다. 



갈라파고스의 산타크루스섬에 위치한 다윈 센터로 가는 길, 잠시 수산 시장에 들렀다가 사람과 동물이 생동감 있게 공생하는 장면을 보았다. 벤치에서 누워 자고 있는 게으른 바다사자 한 마리, 그 옆에 생선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들 사이를 얼쩡거리는 식탐 많은 바다사자, 생선을 낚아챌 기회를 엿보며 능청스럽게 앉아있는 펠리컨과 그 아래를 어슬렁대는 이구아나까지. 서로를 경계하지 않지 않고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관광객들 역시 푸른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하다가 운이 좋으면, 바다 거북이나 상어와 함께 수영할 수 있고 바다사자와도 함께 뒹굴 수도 있다. 동물이 사람을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섬에서 일주일 넘게 지내다 보니 모든 동물들이 친구처럼 느껴져 그들을 조용히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길가의 개와 고양이만큼 흔한 이구아나와 바다사자에게 엉뚱한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구아나’는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처럼 사납게 생겼는데 실제로는 미동도 없이 눈만 감고 있는 게으름뱅이며, 뜬금없이 침을 퉤 퉤 뱉어서 깜짝 놀래 켰다. ‘바다사자’는 그 귀여운 생김새만큼 울음소리도 작고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귀가 아플 정도로 내는 요란한 소리가 마치 사람 트림 소리와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어느 날 해변가에 앉아서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바다사자 한 마리가 조용히 내 옆에 다가오는 것이다. 나를 위협하려는 것도 재롱을 떨며 관심을 끌어보려는 것도 아니라 무심히 곁에 자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나를 단지 자신과 동등한 생명체로 대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바다사자와 나란히 앉아 있었던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이렇게 굴곡 없이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간다면, 흔히들 갑을 관계로 이루어졌다고 규정하는 이 사회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2017년 12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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