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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Feb 07. 2021

퇴근길, 지구를 떠나고 싶을 만큼
우울하다면

대자연의 치유가 필요하다면 ① 터키의 카파도키아


만약 지금까지 여행 한 곳 중 딱 한 장소만 다시 가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택하겠다. 특히 하루 종일 힘들고 지쳐서 삶에 대한 물음표가 가득했던 날, 아무도 만나기 싫고 내 모습이 한없이 작아졌던 날, 그렇게 지구를 떠나고 싶을 만큼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카파도키아를 추천하고 싶다. 그곳에는 진짜 우주의 한 행성에 온 듯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터키에서 교환 학생으로 체류할 당시, 공부보다는 여행에 더 관심이 있어 기회만 나면 배낭을 쌌다. 터키는 동서양의 교차점에 있어 10개의 도시를 보고 나면 10개의 국가를 여행한 듯한 느낌이 들만큼 곳곳마다 뚜렷한 색깔과 매력을 갖고 있다. 이스탄불, 파묵칼레, 샨르우르파, 반 호수, 카르스 등등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여행지가 많았지만, 귀국할 때쯤에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은 역시 카파도키아였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평원에 위치한 이 곳은 기원전 1900년 전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첫 수도였으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온 초기 기독교인들의 동굴 교회와 은신처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은 동굴 형태로 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새벽에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일출을 감상하며, 낮에는 투어를 통해 남쪽 데린쿠유 지하도시나 으흐라라 계곡을 둘러보거나 ATV나 승마와 같은 액티비티를 즐긴다. 카파도키아 여행의 중심이 되는 괴레메 마을 외에도 우치히사르, 위르귑, 아바노스 등 특색 있는 마을이 근처에 있으니 하루씩 여유롭게 돌아보아도 좋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달려 카파도키아 괴레메 마을에 도착한 순간, ‘여기… 지구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가이드북에서 사진을 보았고 어떤 곳인지도 듣고 왔는데, 현실 속 내 눈 앞에서 직접 마주하니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장구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거칠게 융기한 땅 위에 다양한 형태의 돌덩이들이 끝없이 놓인 장관. 매끈한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은 모자를 쓴 수도승 같았고 초코송이 과자 같았으며, 숭숭 뚫려 있는 구멍의 울퉁불퉁 솟은 바위들은 지구에 놀러 온 외계인들처럼 보였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사람이 공들여 조각한 인조물이 아니라 화산 활동이라는 자연의 우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뗄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작품들을 보며 이러한 걸작을 만들어 준 자연에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을 둘러보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눈이 깊게 쌓인 길을 서걱서걱 걸으며 MP3 속에 담긴 ‘엔야’의 몽환적인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겨울 비수기였기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수 천 년 간 그 자리를 지켜왔을 바위들에 둘러싸여 홀로 있으니 ‘경외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라는 존재가 이 대자연 앞에서 별 것 아니면서도 이들과 같은 우주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세상에  이유가 거창한  무엇이기보다 그냥 존재 자체로서 소중하고 빛난다는 것을, 고작 스무  정도 살아왔고 앞으로 길어야 팔십  정도   텐데 너무 아등바등하며 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풍경은 그 후 중국의 장가계와 그리스의 메테오라 등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빼어난 절경이었지만 카파도키아가 나의 ‘첫사랑’이었기에 그 앞에서도 카파도키아의 풍경이 문득 그리워졌다. 당시 학생으로서는 10만 원이 넘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그 유명한 열기구를 타 보지 못했고, 두 번 모두 겨울에 방문했기에 눈 쌓인 새하얀 바위들이 여름에는 뜨거운 열기로 얼마나 강렬하게 빛날지 궁금하다. 나에게 그런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 카파도키아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한다.


☆ 2008년 2월과 12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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