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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Mar 01. 2021

퇴근길, 오늘이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였다면

대자연의 치유가 필요하다면 ④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2017년 전 세계를 춤추게 한 레게톤 음악 ‘Despacito’처럼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 기대했던 남미.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강렬한 태양과 때론 온화한 날씨 속에서 낙천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으슬으슬 춥고 숨쉬기 어려운 고산 지대에서 밋밋한 표정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래서인지 그 유명한 마추픽추와 우유니 앞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고, 장기 여행의 슬럼프가 너무 오래가는 건 아닌지 속상했다. 과연 남미가 문제였을까, 내가 문제였을까? 



남미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그렇게 한 동안 잠잠했던 나의 감동 센서를 강렬히 자극해 준 이과수와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세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그리하여 관광객들은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며 좀 더 가까이에서 폭포를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Pureto Iguazu)’와, 20%를 차지하며 전체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브라질 쪽 이과수(Foz do Iguazu)’ 두 곳을 관람한다. 두 장소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악마의 목구멍’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아니, 단연코 남미 여행 전체를 통틀어 베스트는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이었다.



이과수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느껴 보기 위해 보트에 올랐다. 빽빽한 열대 정글과 흙빛의 이과수 강물,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둘러 싸여 물길을 가르니, 꿈과 희망의 나라 놀이동산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릴 적 책 속의 사진을 보고 꼭 와보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 그가 멀리서부터 점점 모습을 드러내자 가슴이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낙하 소리는 내 심장 소리처럼 점차 커져갔고 어느덧 물줄기가 시야를 가득 채우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제 보트는 폭포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 채 물로 매를 맞는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그 고통은 묘하게도 달콤했다.



이제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했다. 이과수 국립공원 내에서 도보로만 이동하기에는 면적이 넓기에, 미니 기차를 탄 뒤 역에서 내려 철골 다리 위를 10분 정도 걸어갔다. 마침내 82 미터의 아찔한 높이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포효하고 있는 악마의 목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참 동안이나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멈추지 못했다. 이런 풍경이 지구 상에 존재하고 내 온몸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있는 이 현실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강렬한 물 폭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포들이 이 곳에 모여 합창을 하는 듯한 거대함, 한 치의 긴장도 놓칠 틈 없이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져 버리는 긴박함. 처음 이과수를 발견한 원주민들은 이 대자연에 얼마나 큰 경외감을 느꼈을까, 분명 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확신했을 것 같다.   



이과수 폭포는 나의 ‘스승’이자 ‘치유자’였다. 그 앞에 섰을 때 내가 앞으로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가슴 깊은 곳에 잠재했던 응어리들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인생의 1/3 정도 지난 시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거대한 진공청소기 같은 물줄기 속으로 그 상처들을 빨아 넣었다. 그 상처들은 굉음과 동시에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지우고 싶은 기억과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있다면 바로 이 곳,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앞에 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 2018년 2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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