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둠으로 삶을 돌아보고 싶다면 ② 알바니아의 티라나
“알바니아? 거기 위험한 나라 아니야?” 방금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도착했다는 말에 엄마께서 깜짝 놀라며 물으셨다. 바로 이 나라는 영화 ‘테이큰’에 나오는 납치범의 국적이자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의 설립자인 토니 휠러가 ‘나쁜 나라들(Bad lands)’ 중 하나로 규정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보니 납치범이 아닌 순박한 현지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는데 바로 ‘벙크 아트(Bunk Art)’의 존재 덕분이었다.
우선 알바니아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기로 한다. 알바니아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다른 나라의 지배 하에 있다가 1912년에 독립했다. 그러나 다시 1939년에는 파시즘의 이탈리아, 1943년에는 나치의 지배를 겪고 2차 대전 후에야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945년, ‘엔베르 호자(Enber Hoxha)’가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후 무려 40년간 독재와 극단적인 쇄국 정책을 실시하여 동유럽의 북한이 된 것이다. 호자는 전 세계가 알바니아를 핵 공격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전국에 17만 5천 개에 달하는 ‘벙커’를 만들었는데, 그의 사후 그 흉물스러운 벙커들이 이색적인 박물관과 갤러리인 벙크 아트로 재 탄생하게 된 것이다.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한 벙크 아트는 두 개가 있다. 우선 시내 중심에는 ‘벙크 아트 2’가 있고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근교에 ‘벙크 아트 1’이 있는데, 2는 1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될 만큼 1의 규모가 훨씬 크고 볼거리도 많다. 우선 시내 한 복판에 반원 돔 형태로 생뚱맞게 자리 잡고 있는 ‘벙크 아트 2’에서는 주로 호자의 독재 정권 시절과 희생자들에 대한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국민들을 내외부의 불순한 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Sigurimi’라는 비밀경찰을 만들고, 공산주의 이념에 반하는 (실제로는 자신의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을 무참히 제거했다. 그런 다음 이 벙커들을 만들고 심지어 같은 공산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 소련, 중국과도 차례로 단교하여 알바니아를 완전한 폐쇄 국가로 만들었다.
‘벙크 아트 1’은 산속의 병영처럼 외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부터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들어가야 하는 만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수용소처럼 생긴 내부는 긴 복도와 전시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전시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가슴 아픈 현대사까지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으며, 그 밖에도 호자가 머물던 방, 전쟁 소리 체험실, 화학 무기 체험실도 있었다. 마치 담력체험을 하는 것처럼 잔뜩 긴장한 채 돌아보아야 했으며, 다른 관람객이 없을 때는 무서워서 결국 들어가지 못한 곳도 있을 만큼 꽤 으스스한 공간이었다. 관람이 끝나고 햇살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문득 내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된 해에 태어나 한 번도 독재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한 권리로 누렸던 민주주의 국가에 산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
박물관 ‘House of Leaves’는 벙크 아트의 연장선에서 관람할 만하다. 원래 이 곳은 병원이었으나 2차 대전 이후 국정원의 일부 기관으로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The Museum of Secret Surveillance’라는 부제가 달렸고, ‘Leaves’에는 ‘나무에 숨어있는 잎’과 ‘책갈피’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단다. 이 곳에는 호자가 대외적으로 알바니아를 살기 좋은 나라로 홍보한 포스터와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일반 가정집이나 외국인들이 묵는 호텔에서 가방과 옷, 청소 도구 등을 통해 도청을 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숨 막히는 사회에서 사는 기분이란 어땠을까. 아무 죄 없이 끌려가서 거짓 자백을 강요당하고 고문을 당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20대 후반의 현지인 ‘수엘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알바니아의 국민들 대다수가 호자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녀의 할아버지 역시 그의 친구가 반체제 운동가라는 이유만으로 2년간 수감되어 혹독한 노동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국가의 경제가 어려운 것도, 알바니아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도 오랜 기간 폐쇄되어 있어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단다. 다른 젊은이들처럼 자신도 기회가 된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으며 특히 북유럽 국가에서 일하고 싶은데 비 EU 국민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푸념했다.
1991년, 동유럽 국가 중 마지막으로 알바니아에도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현재는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국민들이 이민을 떠나고 있다. 이리저리 다른 나라의 속국이었다가 오랜 기간 독재자의 억압까지 거친 이 작은 나라가 안타깝게 느껴지면서, 점차 아픈 과거를 벙크 아트처럼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길 바라보았다.
☆ 2017년 7월에 방문
★ 1970년대 사건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