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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Apr 19. 2021

퇴근길, 오늘 하루 기적이
궁금하다면

세상의 어둠으로 삶을 돌아보고 싶다면 ④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전쟁’이 아닐까. 20세기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과 90년대 초반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전의 교훈을 되새기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아픈 역사와는 별개로 도시 자체가 분위기 있고 아름다우니 또 다른 기대를 갖고 여행해도 좋을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1945년 발칸반도에 수립된 유고 연방(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은 1980년 강력한 지도자 ‘티토’가 죽기 전까지는 평화롭게 공존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서서히 일어났던 균열은 1987년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호전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하자 각 나라의 독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이를 저지하려고 한 세르비아가 각 국가에 전쟁을 일으킨 것이 유고 내전이다. 



그런데 왜 국가 간의 전쟁을 ‘내전’이라고 부를까? 유고 연방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스니아의 경우에는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발칸 국가들은 ‘민족’으로도 분류할 수 있으나, ‘종교’에 따라서는 가톨릭, 정교, 이슬람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가톨릭 권: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 정교권: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 이슬람권: 알바니아) 그런데 보스니아 내에는 이 세 개의 종교가 모두 섞여 있었기에 그 안에서도 세르비아계(정교)와 기타 민족(주로 이슬람) 간의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라예보의 구 시가지는 모스크와 성당이,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건물과 포탄 자국이 선명한 현대식 건물들이 공존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층층이 놓인 빨간 지붕의 집들이 초록빛 산과 어우러져 주변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하지만 사라예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건물 외벽에 깊숙하고도 선명하게 박힌 수많은 포탄 자국들이다. 그 모습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후대까지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활자가 아닌 가슴으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최적의 산 유물이 될 테니까 말이다. 



보스니아 내전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장소로 ‘Gallery 11/07/95’에 갔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곳은 1995년 7월 11일에 일어난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 사건’ 관련 내용을 전시한 곳이다. 이 학살은 세르비아 군인들이 보스니아의 무슬림들에게 가한 것으로 무려 8천 명이 목숨을 잃어 그 규모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였다고 한다. 사진 속에는 당시 남편과 아들을 한 번에 잃어버린 여자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한 전쟁 전까지는 이웃사촌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적이 되어야 했고, 장례식 때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온 경찰들이 바로 그 피해자들을 죽인 가해자라는 터무니없는 아이러니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양측 모두 이 내전의 희생자인 것이다. 



같은 지구 상에서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대조적인 사건이 벌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1994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동양 남자가 여행 중 찍은 사진 필름의 인화를 맡기고 유유히 기다리는 동안,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는 한 소년이 엄마 심부름으로 빵과 물을 얻으러 밖으로 나가자마자 총격이 시작되어, 우여곡절 집에 돌아와 보니 가족 모두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 날 ‘War Childhood museum’으로 향했다. 2017년 1월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내전 당시 유년층이었던 사람들(1992-1995년이면 나와 동시대의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은 것이다)이 기증한 ‘전쟁에 얽힌 물품’을 그 배경과 함께 설명 해 놓은 곳이었다. 2010년 한 웹사이트에 ‘당신의 어린 시절에 전쟁이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을 올려 3개월 간 참가자들의 다양한 답변을 바탕으로 책이 발간되었고 전시도 구상되었다고 한다. 방문 당시에는 50점의 물품과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미 4천여 개의 물품이 모여있어 전시품은 계속 로테이션될 예정이라고 했다. 



겉 보기에는 모두 평범한 인형과 일기장, 옷가지들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슬며시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몇 개월 동안 숨어 지내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고 적어 놓은 마치 ‘안네의 일기’ 같은 한 소녀의 일기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유도 모른 채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웠을까. 생일 선물로 인형을 수줍게 건넸던 친구가 며칠 뒤에 죽어 버리고, 갑자기 집에서 포탄이 터져 눈 앞에서 형제가 죽는 걸 보았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내가 지구의 다른 한 편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건강히 자라고 있을 때, 이들은 사라예보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총소리와 수류탄 냄새에 휩싸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날 방문한 곳은 사라예보 포위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라예보 역사박물관’이었다. 처음 세르비아군이 사라예보를 포위했을 때만 해도 시민들은 3년이 넘는 장기전이 될 줄 몰랐는데, 사태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차 포기하고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온 가족이 모여 숨어 생활하던 부엌을 재현한 공간을 보던 중, ‘우리 가족이 만약 이런 일을 겪었다면…’ 감정 이입이 되어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예보를 방문하여 전쟁의 참상을 가슴으로 느끼기를,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War Childhood museum’에서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한 청년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자기 또래의 사람들은 모두 사소한 것에 감사하면서 산단다. 지금까지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게 살아서 편안하게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라예보는 다행히 이들처럼 전쟁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내게,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몸 건강히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라는 소중한 교훈을 전해 준 곳이다.


☆ 2017년 7월에 방문 

★ 1992~1995년 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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