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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Apr 26. 2021

퇴근길, 자유롭게 여행했던 날들이 그립다면

세상의 어둠으로 삶을 돌아보고 싶다면 ⑤ 미국 뉴욕의그라운드 제로


때는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평화로운 오후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TV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고층 빌딩 상층부에 돌진하자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뉴스 속보? 그럼 저게 실제 상황이라고?” 옆에 계시던 엄마께서도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고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초강대국 미국의 중심 한 복판에서 일어난 일,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음을 모를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좀 더 자라면서 이 테러가 국제 관계의 판도를 바꾼 생각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두 개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펜타곤을 공격했다. 그로 인해 전 세계 90여 개 국의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테러는 또 다른 전쟁을 낳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전쟁이 발발하여 반미 정부가 무너졌다. 두 문명이 충돌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 반 이슬람 정서가 만연하게 되었고, 테러와의 전쟁이 마무리되나 싶을 때쯤 ‘IS(이슬람 국가)’가 등장했다. 이제 미국의 심장부 대신 전 세계의 무고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프트 타깃 테러가 일상이 된 것이다. 



사건이 발생했던 지점이자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을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른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는 ‘핵폭탄이 폭발한 지점, 대 재앙의 현장’을 뜻하지만, 현재는 이 곳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우선 사건 발생 10주년을 추모하며 2011년에 개장한 ‘911 메모리얼 박물관’을 방문했다. 정문에 들어서자 무너진 빌딩을 지지했던 두 개의 철 기둥이 보였고, 그 밖에도 참사 현장에서 남아 있던 철근이나 계단 등이 그대로 옮겨져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각 전시실에서는 911 당일과 전후 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 날 납치된 비행기와 펜타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계무역센터의 상징성은 무엇이며 알카에다가 직전에 테러를 어떻게 모의했는지, 911 직후 전 세계의 추모와 재건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벌써 15년 넘게 지난 일에다가 그 날 뉴스 속보를 통해 본 충격적인 장면밖에 기억나지 않았었는데,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보면서 당시 참사 현장에 있었던 듯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 날 납치된 비행기 안의 승객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죽음이 눈 앞에 있음을 직감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긴 음성 메시지는 목소리의 톤이 담담했기에 더 슬펐다. 차라리 창문 밖으로 투신하는 길을 택한 사람들과 공포에 싸인 채 빌딩에 남아 죽어가던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순식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박물관 옆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인공 폭포가 있다. 그 안에는 911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있으며 쏟아지는 폭포수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눈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박물관 한쪽 벽면에 적혀 있던 구절을 떠올려 본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시간이 지나도 당신들을 잊지 못하리)”. 우리는 당시의 희생자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데려갔던 그 날의 테러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2021년, 현재는 테러보다 코로나의 위협으로 전 세계가 시름 중이다. 하지만 내가 여행했던 당시에는 어느 나라를 가든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해야 했고, 특히 IS의 주요 타깃인 유럽 선진국에서 그 불안감이 더 컸었다. 불과 3개월 전에 여행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차량 테러 소식을 들었고,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구경할 때는 9개월 전 바로 이 곳에서 트럭 테러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섬뜩했다. 런던 지하철 안에 있을 때 갑자기 경보음이 울려 황급히 빠져나와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당시 새로운 국가에 도착하면 통신사의 요금 관련 메시지와 더불어, 외교부의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었다. “[외교부] 세계 각지 테러 가능성 높아 신변안전유의, 특히 다중밀집장소 방문 자제 요망”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지 않게 되었으면, 해답이 보이지 않는 이 두려움이 끝나기를, 하루빨리 코로나도 종식되고 테러도 사라져서 정말 마음 편히 여행만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 2018년 6월에 방문 

★ 2001년 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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