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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May 11. 2021

퇴근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싶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①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


허니문의 고전이자 한 달 살기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는 곳, ‘발리’는 사람들에게 여행지를 추천하면서 “여행보다는 살고 싶었던 곳이에요”라고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곳이다.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의 기준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온화한 기후, 둘째 저렴한 물가, 셋째, 친절한 사람들. 그런데 발리는 이 모든 요소를 충족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정확히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발리 중부에 위치한 농촌 마을 ‘우붓’이다.



2012년, 처음으로 내 아이템의 담당자가 되어 한창 의욕에 넘쳐 일하던 시기였다. 가끔 주말에도 회사 관련 일을 공부했을 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열심히 일하니까 성과가 나왔으며 인정을 받으니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그렇게 지난 몇 개월간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잠시 숨을 고르며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휴가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발리의 ‘우붓’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여주인공이 ‘사랑’을 만나게 된 그 장소, 그래, 바로 이 곳이다! 여주인공 줄리아 로버츠가 발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결국 영화는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으로 수영장이 딸린 풀 빌라에서 묵는 호사를 누려보기로 했다. (우붓의 풀빌라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Nefatari’라는 곳이며, 당시 1박에 약 12만 원 정도 지불했었다) 그때 우붓에서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러했다. 닭이 우는 소리와 자연의 리듬에 맞춰 눈을 뜬 뒤, 리셉션에 전화해서 아침을 주문한다. 인도네시아식 아침 식사 ‘부부르 아얌(닭죽)’과 신선한 과일로 배를 채운 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낮잠을 자고 난 오후에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애프터눈 티와 함께 ‘돌체 파르니엔(빈둥거림의 달콤함)’을 맛본다. 하루는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수영장에서 춤을 추며 놀다가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아름다운 지구, 발리의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듯 행복했다.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고 순전히 존재함으로써 행복하다는 느낌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사회생활이란 갑을 관계의 사슬에 얽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시기였다. 영원하고 확고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기에 우리는 모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를 낮추고 때로는 접대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그만큼 대접해 준 적이 있었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할 나 자신을 소홀히 하지 않았었나. ‘행복하다’는 느낌이 생경하게 느껴졌던 그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9년 겨울, 한국의 추위와 미세먼지를 피해 다시 우붓을 찾았다. 덴파사르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달려 우붓에 도착한 뒤 처음 숨을 쉬는 순간, 왜 우붓일 수밖에 없었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꽃 향기가 묻어나는 신선한 공기와 포근하고 정겨운 농촌의 내음.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 외곽으로 나오면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의 논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간간이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외 불필요한 소음은 들리지 않으며 그 여백을 풀벌레들의 오케스트라가 채워주는 곳.



마을 산책을 하며 집집마다 자리한 힌두교 사원을 지날 때면 진한 향 냄새가 나는데, 이 곳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려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 앞에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차낭’이 놓여 있는데 그 속에는 이름만 들어도 향기가 날 것 같은 ‘일랑일랑’과 ‘프랑지파니’ 꽃 향기가 진동하여 향 냄새와 함께 어우러졌다.



논길 트레킹 후 끝없는 계단식 논에 둘러싸여 마시는 신선한 주스 한 잔은 마음까지 건강하게 해 주었고, ‘스파’가 유명한 만큼 다양한 1일 1 마사지를 즐기면서 마사지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유명한 ‘브랑코’와 ‘네카’, ‘아궁라이’ 미술관 외에도 수많은 갤러리가 산재해 있어 걸음과 시선을 자주 멈출 수밖에 없었던 예술적 영감 또한 가득한 곳이다.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헬~로우” 라며 느리지만 리드믹 한 인사말을 건네면서 환히 웃어주었다.



이토록 영적인 분위기와 순수한 자연 속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담뿍 사랑해줄 수 있는 곳, 꾸미고 만들어 낸 내가 아닌 그냥 내가 되어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곳, 바로 발리에서 살고 싶은 이유다.


☆ 2012년 9월과 2019년 1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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