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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ul 09. 2016

[이 그림책, 참 괜찮아요]  페이지넘김의 미학

엄마의 선물(김윤정)-두번째 이야기

[이 그림책, 참 괜찮아요#5]

엄마의 선물(김윤정)-두번째 이야기

페이지넘김의 미학


우리는 손짓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가. 교육 현장에서도 하룻동안 수많은 손짓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두 손으로 아홉 살 아이들의 얼굴을 부비고 꼭 껴안아 주는 것은 내게 언제나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아이들의 찹쌀떡같이 쫀쫀한 두 뺨은 활짝 웃을 때 더욱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서 오목한 손바닥을 안을 가득 채운다. 부푼 두 뺨을 쓰다듬으며 눈을 맞추는 그 순간, 아이들로 인해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훌쩍 커버린 열세 살 아이들에게는 오른손에 연필이나 책을 쥐고서 왼손바닥으로 등을 쓱 쓱 쓸어내려주면서 이야기 할 때가 많다. 남자 아이들의 짧게 깎여진 머리를 샤샤샥 털어주면서 쓰다듬는 것도 참 기분좋은 손짓이다. 달리기에서 꼴찌로 달려들어오며 쑥스럽게 웃는 아이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려주는 것, 아무것도 아닌 순간을 기분좋아지게 만드는 손짓이다.

반면 우리는 이런 손짓도 많이 보이지 않는가? ‘훠이 훠이’ 다가오는 아이들을 저 멀리 보내버리는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의 손짓, ‘아이고 이게 뭐야!’ 지적하는 손가락질.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바쁘고 귀찮은 어른의 속마음을 들키고 있는지 모른다.

[엄마의 선물]을 읽으면서 나는 ‘손짓’에 주목했다. 특히나 이 책의 손짓은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만들어내는 구성적 특성인 '페이지 넘김'에 의해 그 의미가 달라지는 묘미를 보인다. 페이지를 넘기면 바뀌는 손짓에 의해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며 독자로 하여금 뒤집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림책은 페이지의 예술이다. 그림책의 매체적 특징으로서 여러가지 매력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매력적인 한가지를 들라면 나는 단연 '페이지넘김'이 아닐까한다. 그림책은 그 매체가 만들어내는 구성적 특성에 의해 그림책의 그림 한 장 한 장이 개별적이지 않고 개별적인 일련의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의 그림은 각각의 개별 장면에서 뿐 만 아니라 장면과 장면들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그림책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페이지 넘김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 ‘페이지 넘김의 효과’는 그림책 속의 한 장면을 한 장의 미술 작품과는 다르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장면과 장면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페이지 넘김'을 통해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며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
언젠가는 너에게 돌아온단다
주먹으로 아프게 하면,
그것 또한 너에게 돌아오지
이겼다고 기뻐하거나 졌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5학년 도덕수업과 함께 이 지점에서 내가 덧붙였던 말,

상황과 입장은  뒤집힐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는 것이란다

태현이는 '돌아온다'라는 시를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왔던' 경험을 꺼내었다. 되돌아오는 손가락과 주먹처럼 학교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돌고 돌고 돌아서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왔던 경험, 그리고 친구가 잘못 했을 때 놀렸던 것이 내가 실수 했을 때 다시 되돌아왔던 경험이다. 교실에서 숱하게 글과 말로서 또 경험으로서 배웠던 '역지사지'가 그림책을 통해 아이 안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부메랑  

내가 못했다고 놀렸을 때
다시 돌아온다

왜냐하면 나도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서 하는 말
돌고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막아도 그 말은
돌고 돌아 되돌아온다  

(4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각 그림의 장면에 나오는 손짓을 함께 해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했던 손가락질과 주먹을 내게 되돌려보기도 하고, 양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해보며 이기기도 져보기도 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가만히 살펴보았던 건이는 두 손가락은 다른 사람을 향해 있지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손가락질  

두 손가락은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지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에게로 향해있다  

손가락질 하지말자
나에게 되돌아온다  

(5학년)

그런가하면 '페이지 넘김'을 통해 손가락의 방향이 바뀌는 것에서 '유턴'을 떠올린 두겸이.
누구나 한번쯤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되돌려 유턴할 수 있다'고 말하며 격려한다.

유턴  

아무리 빠른 자동차도  
길을 틀리면
유턴으로 되돌아가고  

틀리면 다시 시작하는
게임처럼  

인생은 누구나 한번쯤
실수 할 수 있어  

누구나 한번쯤
넘어질 수 있어  

(5학년)

마지막으로 내가 보낸 나쁜 부메랑이 아직 되돌아오지 않아 안도하고 있는 친구에게, 혹은 내가 보낸 착한 부메랑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아 실망하고 힘이 빠져있는 친구에게.
수민이가 전하는 한마디,

너무 늦게 돌아온다고 아쉬울 필요는 없다. 멀리보내면 그만큼 세어져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삶의 부메랑  

내가 나쁜짓 하면
나쁜 부메랑이 날아간 것  

나쁜 것이 내 손을 떠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착한일 하면
착한 부메랑이 날아간 것  

좋은 것이 내 손을 떠났다고
아쉬운 것은 아니다  

언젠가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돌아온다고
아쉬울 필요는 없다  

멀리보내면 그만큼  
세어져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5학년)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이십대에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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