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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ul 11. 2016

[그림책 독립출판] 통로 이야기

독립출판으로 어린이작가 그림책 만들어주기


음반 제작사의 '간택'을 받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은 음악가들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음반을 제작하는 것을 '인디음악' 이라고 한다. 이처럼 출판사의 출판 의도에 따른 기획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책을 주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독립출판'이다.  



1. 시작

지도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의 소중한 노력과 손길이 오롯이 담긴 결과물이 ‘책다운’ 어엿한 형식을 갖추어 책꽂이에 꽂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를통해 아이들과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열심히 만든 책에 고유번호인 ISBN을 받아주고 인쇄도 해주려니 출판사가 필요했다. 무작정 강남구청 문화체육과를 찾아가서 독립출판을 하고자 한다 했더니 등록할 출판사 이름이 필요하단다. 출판사 이름이라. 이제껏 학교에서 나는 2-3 담임 혹은 '이선생님'으로 존재했지 무슨 ‘이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2. 그림책을 만들다가 교육철학을 세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래미안’ 이라는 아파트 이름 하나에도 ‘미래지향적이며(來), 아름답고(美), 편안한(安) 아파트’라는 의미가 깃들어있거늘. 나는 어찌 지금껏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의미’ 하나 없이 교육활동을 해왔던가. 당황스럽고 자괴감이 느껴졌다. 당장에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던 나는 동생과 함께 우리의 성씨를 딴 ‘도서출판 LEE’라는 이름을 임시명으로 출판사를 등록하고 나왔다. 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이름인가. 이 이름으로 인하여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괴감에 빠졌다. 스스로 철학과 의미가 부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Teacher Lee, 이선생님. 나의 정체성는 과연 그것 뿐이었던가?

그 날 밤, 나는 찬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정말, 교육철학이 부재했던가?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교육현장에서 지난 6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여러번 마음이 깨졌고, 나의 작음을 느꼈고, 울었고, 되는대로 흘러가고 싶지 않아 부족한 발버둥을 쳤고.. 그 과정에서 헛발길질 같던 노력들이 마음을 일으켜 세웠으며, 미약하지만 선명한 뜻을 세웠다.

나는 단지 이제껏 내 안에 산재되어있는 그것들을 마음먹고 한데 모아 정리하고 갈무리해 볼 기회와 계기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출판사 이름’으로 인해 나는 그 과정을 시도 해볼 계기와 명분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다.  



3. 그리하여 탄생한, 교육미술관 통로

교실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줄 때 '한계'를 느꼈던 것 순간들이 있다.

아이가 털어놓는 힘겨운 일에 '힘내'라는 힘없는 말밖에 건넬 수 없을 때, 교실이라는 온실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무력하다고 느껴질 때.


그렇게 나의 작음을 느낄때면, 내 안에 담겨져 있는 부족한 것을 아이에게 주기보다는 내가 담아낼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하늘로부터 아이들에게로 흘려보내는 '연결 통로' 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통로로서 살기위해 이끼가 끼지않도록 늘 스스로 비우고 배워서 남 주는 삶.

흘러가는 선한 영향력이 아이들의 마음에 시와 그림이 되어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삶.


이것이 바로 내가 교실에서 마음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꽉 붙잡았던 삶의 방향이었다.

1) 흘러가다
내가 담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흘려보내는 연결 통로(헨리나우웬, 2001)가 되기를 소망한다.

2) 스며들다
통로를 통해 흘러가는 선한 영향력이 아이들의 마음에 시와 그림이 되어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삶과 교육을 통해 내가 담고자 했던 의미를 이 두 가지의 큰 줄기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비로소 내 안의 것들이 제자리를 잡고 빛을 내며 힘을 발휘하는 순간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작업으로서 다음과 같은 로고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스며들며 흘러가는 푸른 물줄기와 함께 '로'라는 글자로 멀리 넓게 뻗어나가는 길(路)을 형상화했다.

그렇게 내 삶의 방향과 철학 그 자체를 담은 '통로'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창작그림책 전문 독립출판사가 탄생하였다.

통로의 책은 현직 교사와 어린이들이 교실 속 수업을 통해 만들어낸 어린이창작그림책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교육에는 학원비을 받고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미술학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공교육의 토양에서 교사가 자발적으로 심은 씨앗에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자라나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이라는 것에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교육미술관 통로를 통해서 만나게 될 많은 아이들과 그들이 품고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통로가 정말 '통로답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다짐한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이십대에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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