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심려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함께 맞추고 있던 퍼즐조각을 내려놓고 엄마 쪽을 슬쩍 봤다. 엄마는 바닥에 어지러이 펼쳐진 피스들을 골똘히 응시한 채 "하늘……색, 꽃……, 꽃……. 가장자리……."를 읊조리듯 반복하고 계셨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마치 엄마가 찾는 바로 그 피스가 소환에 응답해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며 두둥실 떠오를 거인 마냥.
딱 한 피스가 모자란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하는엄마의 앞에는, 형태가 꽤 많이 갖춰졌으나 중간에 딱 한 조각이 비어있는 퍼즐의 일부가 있었다. 내가 맞춘 것, 아니 것'들'과는 대비되는 모양이었다. 엄마의 작품이 하나의 큰 그림을 구성하는 것과 달리, 내가 맞춘 퍼즐조각들은 그림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부분들로 나뉘어있었다. 엄마가 맞춘 퍼즐이 한 입 베어 먹은 쿠키 같은 모양새라면, 내가 맞춘 퍼즐은 쿠키 부스러기 같달까.
왼쪽 큰 덩어리는 엄마의 작품. 바로 아래 위치한 퍼즐 조각들은 엄마가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해둔 피스들. 화면 오른쪽, 그리고 왼쪽 위에는 내가 맞춰둔 퍼즐조각이다.
이런 각기 다른 퍼즐의 모습은 엄마와 내가 각각 퍼즐을 맞춰가는 방식을 반영하는 듯했다. 엄마는 각 퍼즐조각의 세세한 형태와 색깔을 고려해 하나의 통일된 흐름을 따라 한 조각 한 조각 맞춰가고, 나는 느낌상 비슷해 보이는 퍼즐조각들을 끼리끼리 모아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모양을 맞춰나간다. 그렇게 하다가 바로 안 맞춰지는 조각들이 있으면, 나는 늘어놓은 여러 퍼즐 '부스러기' 중 다른 걸로 넘어가 깨작거리는 식으로 동시다발적인 작업을 하는 거다. 반면에 엄마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본인이 찾는 그 피스를 꼭 찾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거고― 그러다지금처럼 막히기도 하는 거고.
엄마와 내가 많은 면에서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성격유형검사 중 하나인 MBTI에 따르면 나와 엄마는 INFP와 ESTJ로서 정반대의 기질을 지닌다.), 퍼즐을 맞추는 방식까지 다를 거라곤 누가 알았을까.
'아니, 왜 굳이 저 퍼즐조각 하나를 찾으려고 저렇게 애쓰는 거지?'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을 떠나 잠시머리를 식히려고 하는 퍼즐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힘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별 것 아닌 것들에도 엄마는 항상 저러더라.
그래서 여전히 애타는 눈으로 퍼즐조각들을 응시하고 있던 엄마에게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냥 다른 거 먼저 찾으세요." 그러고서는 다시 내가 맞추고 있던 퍼즐조각들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러곤 평소 엄마와 부딪힐 때마다 자주 그랬듯, 속으로 생각했다.
아, 답답해.
Ep 2.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른 것을 보는 우리
엄마와 나의 이런 차이는 퍼즐을 맞추는 데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한번은 내가 디자인한스크랩북 표지를 엄마께 보여드리며 앞뒷면이 서로 어우러져 보이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는 5초는 족히 넘는 시간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스크랩북을 뚫어져라 보셨다.
"어때요, 한 세트 같아 보여요?" 내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어봤다.
"음……. 왼쪽에는 꽃장식이 있고. 오른쪽은 꽃장식이 없네. 둘 다 자수를 썼고 ……. "
"그래서 잘 어울려요?"
"글쎄, 모양이나 패턴이 똑같은 건 아닌데 소재가 비슷하네." 엄마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러면 안 어울린다는 말이에요?"
"그건 아니고……."
"그럼 같이 봤을 때 완전히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 그렇진 않아." 이 말 끝에 엄마는 겨우 '옜다' 싶은 느낌으로 "어울려."라는 말을 붙였다.
분명 답을 듣긴 들었는데 답이 되지 않은 듯한 찝찝한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스무고개 같은 대화가 이어진 후에야 겨우 엄마의 답을 들을 수 있는 걸까.
왜 엄마는 찾아지지 않는 퍼즐조각을 꼭 찾아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걸까.
답답하면서도 궁금한 마음에, 엄마와 했던 대화와 엄마의 행동이 담긴 기억을 되감아 찬찬히 뜯어봤다.
스크랩북 표지를 볼 때에, 엄마는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나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 엄마는 '어울린다'고 판단할 수 있기 위한근거를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찾아야 했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는 자세한 이유를 따지지 않은 채 '어울린다'고 먼저 직관적으로 판단했던 거다. 엄마처럼, 눈에 보이는 모양과 패턴의 세밀한 차이나 소재의 공통성을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 어쩌면 그 모든 디테일을 건너뛰고 ― 감으로 느껴지는 전체적인 색과 재질의 균형과 조화를 따지니까.
이런 나와 엄마이니, 내 입장에선 답답한 스무고개, 엄마 입장에선 머리 아픈 취조 같은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니 만약, 내가 질문을 하는 대신 반대로 엄마가 내게 "왜 스크랩북 앞뒷면이 어울리냐고 생각하냐"라고 물어봤다면, 난 '어울린다'를 말할 수 있기까지의 엄마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왜 엄마는'이 아니라, '그냥 우리는' 그런 거다.
Ep 3.
퍼즐조각처럼 들어맞는 우리
퍼즐조각의 미로 속에서 엄마는 언제나 길을 잃은 듯해 보였다.
처음 내게 도움을 요청한 이후로도 엄마는 계속 퍼즐조각 하나씩을 찾지 못해 종종 끙끙대셨다. 피스 또 하나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는지, 엄마가 자꾸 애타게 내 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지자 나도 더 이상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시선을 따라, 넘실거리는 색과 모양의 바다처럼 펼쳐진 퍼즐조각들을 쓱 훑어봤다.
보자마자 알았다 ― 아무래도 엄마가 주문한 조건 하나하나에 부합하는 피스를 찾으려고 하다가는, 엄마랑 같이 "하늘색, 꽃, 가장자리"를 멍하니 주문처럼 외우게 될 거란 걸.
그래서 나는 퍼즐 조각들에서 시선을 옮겨 엄마가 맞추고 있던 그림을 봤다.
먼저는 맞춰진 조각들의 전체적인 형태와 색감을 빠르게 스캔한 후, 다음엔 찾지 못한 피스 때문에 생긴 빈 공간의 형태를 살피며, 이 모든 걸 고려했을 때 특징적으로 기억에 남는 디테일 몇 개를 염두에 뒀다.
이렇게 머릿속에 저장한 특징을 떠올리며 다시 어지러이 널브러진 조각들을 쭉 훑으니 느낌상 엄마가 찾는 것과 같은 퍼즐 조각들이 몇 개 눈에 띄었다. 이런 피스 서너 개를 빠르게 맞춰 보니……
"찾았어요."
그렇게 맞춰진 그림을 엄마는 이어서 차근차근 완성해나갔고, 나 역시 해오던 대로 비슷해 보이는 피스들끼리 분류하고 맞추며 여러 개의 퍼즐조각 그룹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모습대로 퍼즐을 묵묵히 맞춰갔다. 다만 전과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엄마와 내가 함께 움직이게 됐다는 거다. 엄마가 원하는 피스를 찾지 못해 막혀있을 때, 그저 답답해하는 대신 그 피스를 내가 대신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지나자, 퍼즐이 맞춰지는 양상에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겼다.
엄마는 당신이 맞춘 그림에 중간중간 비어있는 공간이 생기면 그 공간을 채울 피스를 찾으며 허덕거리는 대신, 먼저 맞출 수 있는 그림의 다른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엄마가 그렇게 그림을 다른 방향으로 맞춰가는 동안, 나는 엄마가 찾지 못한 피스를 빠르게 찾아 퍼즐의 빈 공간을 완성시켰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세심한 관찰력을 이용해, 당신이 맞춰놓은 그림과 내가 맞춰둔 작은 퍼즐 부스러기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피스들을 찾았다. 당신과 내가 각각 맞춘 퍼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셈이었다.
내가 맞춰둔 퍼즐 부스러기들과 엄마가 조합해두신 그림들이 합쳐지며 우리가 맞춘 퍼즐은 순식간에 몸집이 커졌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를 넘어 서로, 또 함께 퍼즐을 맞춰나갔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퍼즐은 뚝딱뚝딱 완성돼갔다.
그렇게 퍼즐 초보자였던우리는 완벽하게 퍼즐을 맞췄다.
여담
엄마와 나는 퍼즐을 맞출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수많은 다른 상황들 속에서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심지어 길을 걷다 같은 사물이나 풍경을 봐도 우린 다른 반응을 한다. 엄마는 대상 자체의 모습을 구성하는 디테일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반면, 나는 그 디테일들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토대로 한 내 감상을 얘기하니 말이다. 이렇듯 엄마는 전체를 보기보다는 각각의개별적인 정보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량의 정보를 취합한 후 하나하나 뜯어 세세히 보신다. 반면 나는 각각의 정보보다는, 여러 정보 간의관계성이나 다양한 정보가 종합적으로 만들어내는 큰 그림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렇게도 생각해봤다. 마치 닿자마자 빛을 일곱 갈래의 파장으로 산란시키는 프리즘처럼, 엄마의 눈은 하나의 대상을 다수의 개별적인 부분들로 인식하나 보다. 그래서 내가 한 줄기의 빛을 보고 있을 때, 엄마는 일곱 빛깔 무지개를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엄마는 수많은 나무 사이를 거닐면서도 당신이 숲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나는 숲 속을 산책하면서도 방금 어떤 나무를 지나쳐왔는지 자주 기억하지 못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