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의 20·30대 분들이 참여하는 건 그렇게 놀랍지 않았지만, 항상 반달웃음을 한 채 수줍은 미소를 짓는 한 중학생이 가끔씩 교복을 입은 채 모임에 나오는 건 신기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신기했던 건, 서로 판이하게 다른 삶의 궤도를 갖기에보통교류할 일이 없는 인생의 선배들과 나란히 앉아 평등한 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였다.
시크한 패션 디자이너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알고 보니 익살스러운 연기를 맛깔나게 하시던 40대 P씨.
도저히 낯가림이란 걸 알지 못할 것 같은, 처음 봤을 때부터 어색함 하나 없이 대화를 주도하던 50대 N씨.
온화한 교장선생님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멋스러운 체크무늬 양복과 구두를 항상 갖춰 입고 오시던 60대 O씨.
우리는 함께 서로를 지그시 마주본 채 손을 맞잡기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 깔깔거리며 웃기도, 미친 듯이 폴짝폴짝 뛰다가 진이 빠져 쓰러지기도, 가만히 앉아 눈물을 흘리기도, 끓어오르는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놓기도 하며 서로에게 마음의 울림통이 돼주었다.
몇 달에 걸친 수업이 끝난 이후, 우리는 한 술집의 테이블에 둥글게 둘러앉아 잔을 맞부딪히고 있었다.
'모두 수고했다'는 인사를 서로서로 건네는 걸로 시작해 우리는 낯부끄러운 칭찬과 기분 좋은 자축, 그리고 시덥잖은 말들과 진지한 얘기들을 오가며 안주 접시를 하나씩 비워갔다. 그러다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어떤 이유로 연극 수업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테이블 위에 던져졌다.
아주 잠시, 모두의 사이에 생각과 고민의 침묵이 흘렀다.
조금씩 거북해지는 묵언 속, 두 장성한 딸의 아버지이자 최연장자이신 O씨가 자의 반 타의 반 말문을 열었다.
"인생의 모닥불이 없어서 죽기 전에 후회하겠다 싶더라고요. 뭔가 큰 목표를 생각하고 내 안의 모닥불을 꺼버리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삶의 황혼에 접어들기 시작한 흔한 중년의 남성들은 물론, 어떤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얘기를이어갔다. 해야만 하는 일들을 성실하고 열심히 해나가면서도, 뭔가 충족되지 않아 꿈틀거리는 내 안의 무언가를 스스로 밟아 꺼버리려고 했다는. 그래서 연극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무게 있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고백하는 O씨의 모습에 어딘지 다들 숙연해지는 듯했다.
"잘하셨어요.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P씨가 뿔테 안경을 살짝 고쳐 쓰고 고개를 끄덕이며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같이 만나좋은 시간도 보내는 거구요."
니콜라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후, "자유"를 외치는 조르바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아 소설의 배경이 된 크레타 섬을 직접 다녀오기까지 한 P씨였다. 항상 웃는 표정으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P씨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가 O씨의 무거운 말에도 이렇게 답변하는 게 놀랍지 않았다.
얼굴이 살짝 벌겋게 오른 듯한 N씨는 이런 O씨를 보더니 호쾌하게 내뱉었다.
"연극하는 거 좋았어요?"
N씨의 우렁찬 질문에 다들 살짝 벙찐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선생님한테는 미안한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솔직히 나는 연극이 좋은 지는 몰랐어. 나는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사람이거든요? 궁금하면 일단 질러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저 앞에 갤러리에서 그림 배워서 전시도 하고……." 말하던 중 그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며 본인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어때, 괜찮지? 그림이 생각보다 재밌더라구요. 근데 연극은 생각보다는 좀 지루하더라고. 지루하다기보다는, 들이는 시간에 비해 아웃풋이 없는 느낌이라 해야 되나? 대사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많이 연습해야 되는 일이냐고."
그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다시 결단을 한 듯이 말했다. "하지만 하기로 했으니 그냥 한 거야."
하지만 이런 P씨와 N씨의 말에도 마음이 개운하게 풀리지 않았는지, O씨는 "해 봐야지 안다는 것 자체가……."하며 말을 흐렸다. 실은 '취미 부자'임을 고백하며 O씨는 지금까지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음을 부끄럽다는 듯 얘기했다. "해보고 싶은 건 많아서 다 손을 대보긴 했어요.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그렇게 계속. 그런데 막상 해보면 뭐 하나 진득하니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이 말 끝에 멋쩍은 듯 '허허' 하는 O씨의 목소리에 어쩐지 힘이 많이 없어 보였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O씨의 부끄러움이 이해는 되지만 이에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기에.
뭐든지 다 시도해보며 이게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하나하나 확인해본다는 N씨의 당당한 고백에,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O씨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그 '단 하나의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걸까?
조급한 마음으로 '삶의 모닥불'을 찾아내고 피우려는 대신, P씨의 말마따나 그냥 해보고 즐기는 걸로 만족하면 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내, 이건 내가 나라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최근에 재미로 봤던 사주를 빌어 말하자면,* 나는 불의 기운이 강해 자유로우면서도 고집이 세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 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게 너무 확실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 말려도 결국엔 해야만 한다는 거였다. 이러니, 나는 '삶의 모닥불'을 찾으려고 애써 노력하기엔 이미 삶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니 내 생각이 아마도 O씨에게는 배부른 소리이려나.
아무래도 모르겠어서 그냥 맥주나 한 입 들이켰다.
✎✎✎footnote
*나는 의심이 많다. 그래서 한번은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먼저 말씀하시는 것 들어보고 싶다"라고 얘기했었다. 괜히 내가 먼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가는, 대충 눈치로 보이는 것들을 아무 거나 말씀하실 것 같아서.
다소 당돌해 보였을 수도 있는 내 요청에 그분은 한마디 말없이 책장을 휙휙 넘기며 뭔가를 휘리릭 쓰시더니,
"뭐 가르치나 보네. 그런데 일을 하나만 하는 것도 아니네?" 했다.
어?
아무리 눈치가 좋아도 내가 영작문 교육과 관련해 다양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라는 걸 알진 못할 것 같은데…….
그때부터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분의 말씀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아멘.(이라고 농을 하기엔 사실 난 나름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Ep 2.
점, 선, 공간의 삶
이런 O씨와 비슷하게 모닥불을 열심히 피우고자 애쓰는 한 사람이 있다.
"이렇게 빈둥대면 안 되는데."
주말 오후마다 반복되는 아빠의 레퍼토리다.
아빠가 주말을 '잘' 보낸다는 건, 목적지가 있는 외출을 한다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무언가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외국어 공부든, 맛집 탐방이든, 바람 쐬러 외출하는 거든, 아빠는 꼭 '뭔가'를 해야 한다.
그 '뭔가'가 뭐였으면 좋겠는지 확실히 모르면서도.
TV를 보는 것도, 낮잠을 자는 것도, 쉬는 것도 모두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성실의 아이콘 아빠는 그렇게 "빈둥"댈 때마다 스스로의 모습이 마뜩잖은지,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자 엄마랑 내게 허락을 구한다. "이렇게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아있어도 되는 거냐"며.(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이런 아빠와 함께 놀러 가면, 일명 ― 내가 놀리듯 명명한―"대디 패키지" 여행을 하게 된다.
대디 패키지는 이렇게 진행된다.
1. 계획을 세운다. (계획이 없을 순 없는 것이다.)
2.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계획을 바꿀 거라면 계획은 만들지 않는 게 낫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은, 정해진 목적지에서 다음 목적지까지 열심히 움직이는 행위이다. 내가 도착한 곳이 마음에 들어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이제 가야지"라는 말과 함께 아빠는 다음 목적지로 부랴부랴 이동할 채비를 하시는 거다. 그래서 나는 남아있고자 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미련을 한가득 안은 채,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음 행선지로 향하곤 한다. 그렇게 아빠와 하는 여행에서, 목적지란 종종 누리는 공간이 아닌, 들으면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찍어야' 할 점이 된다.
그런 점과 점 사이를 이어 선을 그려가는 게 아빠의 여행 방식이라면, 나는 여행을 할 때 만나게 되는 장소를 공간으로서 충분히 느끼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미리 세워둔 계획이 있더라도, 어떤장소가 마음에 들면 그 장소가 자아내는 분위기와 또 그 분위기에 반응하는 내 생각과 감정에 충분히 잠기려고 한다 ― 시간을 오래 두고, 찬찬히. 이런 나와 비슷한, "한겨울에 활활 타오르는 불의 사주"라는M이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우린 영하 10도에 가까운 눈 내리는 날에도 30분이 넘는 시간을 정자에 앉아 호수의 풍경을 그저 잠잠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M과 나는 탄성을 내지르며 정자로 다가갔다. 거기서 우린 눈 내리는 풍경을 말없이 감상했다. 손발이 다 얼 만큼 날이 차가웠음에도,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아름다웠기에.
손발은 차가운 걸 넘어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았지만, 그 날 정자에서 M과 함께 나는 시간과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온 방향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날려, 마치 땅에서 솟구쳐 오르다가도 이내 땅과 평행선을 그리며 춤추는 듯한 눈송이를 따라 마음은 자유롭게 춤을 췄다. 그러다가도, 거침없이 휘날리는 눈 사이로 우직하게 서있는 산과 그 산허리에 자리잡은 절로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 마음이 가만히 머물렀다. 그렇게 점차 고요해지는 풍경 속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과 마음을 가다듬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달리 바삐 가야 할 다른 곳도 없었지만, 만약 있다 하더라도 나와 M은 그 공간에 있고 싶은 만큼 머물렀을 것이다. 이런 나와 M을 보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진 모르지만.
하지만 그렇게 여유를 즐긴 탓에 우린 늦게 이동을 하게 됐고, 시간이 너무 늦어진 탓에 인심 좋고 호쾌한 택시 아저씨께 "강력 추천" 받은 찜닭 맛집에는 입성하지 못했다. 겨우 찾아 들어간 식당 역시코로나 19로 인한 영업제한 때문에 일찍 닫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기대하고 있던 '찜닭에 소주'를 느긋하게 즐길 수도 없었다. 결국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나며 M과 나만 홀로 식당에 남았고, 늦게까지 서빙을 해야 했을 어린 알바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은 채 우린 쫓기듯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