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앞서 소개한 지인 T는 무슨 일이 닥쳐와도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은 채 평온할 것만 같은 사람이다.('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모토를 내건 시몬○ 가구 브랜드의 모델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느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로 인간사를 본다면, T는 어떤 경우에서도 바위이고 세상만사는 온갖 종류의 계란들, 그중에서도 작디작은 메추리알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무슨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피하지 않고 덤덤하게 받아내는 T에게도, 천적까지는 아니어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기피대상이 있다. 내 오래된 친구 M이다.
실제로는 일면식도 없는 둘이지만, 공상하기 좋아하는 내 머릿속에선 둘은 이미 길지 않은 만남을 가진 후 소위 '손절', 그러니까 단호하게 연을 끊어버린 상태이다. (다소 과장된) 가상의 만남은 이러했다.
예전에 찾아뒀던 예쁜 카페의 주소를 보내며 '이곳에서 보면 어떻겠냐'는 M의 연락에,
내키지는 않지만 딱히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은 T였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집에서 '꽤 먼' 길을 나서야 한다는 점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본인의 집과 M의 정확한 중간지점에 있는, 버스로 17분만 타면 되는 거리에도 카페가 있는데
굳이 지하철로 32분 걸리는 거리를 가야 한다니.
약속시간에 칼같이 도착한 T는 으레 하듯 카페 내부를 스캔했다 ― '테이블. 계산대. 커피와 차. 다행히 아메리카노 있음. 별다를 것 없는 커피 판매장소.' 분석을 완료한 T는 뭐하러 이 먼 곳까지 왔나 싶은 생각에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그 사이 M은 초행길을 헤매면서도 길이 예뻐 사진을 찍고 있었다.
5분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T는, 다시금 시계를 확인을 하려던 차 (본인 눈에 보이기로는)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는 M을 포착했다. 제대로 된 인사도 건네지 않는 T의 무표정한 모습에 약간 무안해졌지만, 이 정도에 마음이 상할 같이 소인배는 아니었기에 M은 카페가 정말 예쁘지 않냐며 T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
한 시간 동안 두 번 환승해서 온 보람이 있는 것 같다며.
T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 이내 묵언수행을 시작했다. T는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 들이키듯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만에 후루룩한 채 '언제 나가나' 싶은 표정으로, M이 애써 끌어내는 질문들에 단답으로 일관했다.
M의 인상이 아주 살짝 구겨지기 시작했다.
극과 극을 달린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둘의 간극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
T와 함께 있을 때 내가 T의 모습에 답답해한다면, M과 함께 있으면 종종 내가 T가 된 듯한 기분이다.
을지로 3가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엇갈려 다소 힘겹게 상봉한 M과 나는 지하철역 근방을 막 벗어나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M이 나처럼 뭘 먹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어도 한참 오산이었다. 걷기 시작한 지 5분여 쯤 됐을까, 짧은 침묵을 깬 M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나 서촌 가고 싶어!"
당황했다. 서촌은 을지로 3가에서 멀지는 않지만, 지하철이든 버스든 바퀴 달린 무언가를 타고는 이동해야 할 거리의 동네이기에.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이 났다. 물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니 이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약속한 장소는 을지로 3가였고, 이제 막 만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만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니! 심지어 을지로 3가보다 경복궁이 집에서 더 가까운데.
T만큼은 아니어도 비효율적인 걸 싫어하기에 ― 여행을 계획할 때, 가고자 하는 장소끼리의 최단거리를 미리 찾아보고 동선을 짜둘 정도이니 ― 나는 M의 급작스런 목적지 변경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럴 거면 처음부터 경복궁에서 만나자고 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소심한 나는 그저 답답함에 벌겋게 달아오른 말을 꿀꺽 삼킨 채 "그래!" 할 뿐이었다.
당연히 M은 신이 났고, 나는 신나서 총총 걸어가는 M을 뒤따랐다. 늘 그랬듯.
Ep 1-2.
익숙함 속 낯섦,
그 짜릿함
그렇게 우리는 서촌이 근방에 위치한 경복궁역을 향해 갔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서촌은 M과 같이 다니던 중학교가 위치한 동네라, 익숙하다 못해 목이 늘어난 케케묵은 잠옷 따위가 갖는 너절한 기운이 진하게 풍기는 곳이다. 그래서 더더욱 '왜 굳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동네를 '이렇게까지' 와야 하냐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중학생 시절 하굣길에 수도 없이 지나쳤던 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낯익은 풍경, 소리, 냄새, 그리고 이 모든 게 몸에 익으며 생긴 기억의 고랑을 따라 흐르듯 자동적으로 발걸음이 몇 발짝 떨……어지기도 전에 M이 방향을 틀었다.
거기엔 본 듯하지도 않고 본 적은 더더욱 없는 카페 겸 바가 떡하니 있었다.
'여기, 내가 아는 동네 맞나?'
살짝 멍해진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M은 뒤따라가던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저번에 와봤는데, 좋더라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듯 단출하게 한 마디 하는 M을 따라 바에 들어섰다.
자세히 둘러볼 필요도 없이 딱 드는 생각은 '역시'였다 ― 역시 좋았다.
늘 그랬듯.
Ep 2.
편한 것도 좋지만
불편한 건 더 좋아
M과 함께 있을 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직업군인이셨던 할아버지 밑에서 모범적인 막내로 자란 아빠의 영향인지, 아니면 나도 인정하기 싫은 내 본성 때문인지, 나는 계획이란 것 자체를 답답해하면서도 어떤 일들에 있어선 계획 없이 뭔가를 임의대로 진행하는 걸 어려워한다. 계획이 없다면 만들어야 하고, 계획이 있다면 따라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나는 불안함에 고장나 버린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시간을 맞춰 급하게 나가야 할 일도 없으면서, 맞춰놓은 알람보다 15분 늦게 일어났다고 억울해하며 엉엉 울기, 생각했던 만큼의 여행경비를 꽉 채우자 3000원여 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엄마에게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짜증내기, 생각했던 것과 다른 물건 색상이 마음에 안 들어 셀프로 매니큐어로 도색하겠다고 온갖 지랄을 하다가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자 물건을 버려버리기.(그러면서도 버려지는 물건이 아까워서 속상해하기, 버려진 이 물건이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홧김에 벌인 내 행동으로 인해 오염될 자연환경에게 미안해하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또라이같지만, 다 사실이다.)
다행히 이 미친 짓거리들은 아주 예전 일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금의 나는 불안함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지긋지긋한 불안함은 여전히 주위를 맴돌며 내게 자꾸 손짓한다. 그래서 나는 늘 긴장하고 경계한다.
반면 내가 아는 M은 ― 물론 누구나 그렇듯,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되진 않지만 ― 자유롭다.
내게 변화가 변수라면, M에겐 삶이다.
내가 대비하려 할 때, M은 그냥 부딪혀낸다.
내게 변덕이 골칫거리라면, M에겐 미덕이다.
내가 새로운 걸 경계한다면, M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렇기에 M은 내가 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하는 것들의 집합체라고도 느껴왔다.
그래서 부러웠고, 불편했다.
M에게 자연스러운 것들은 내겐 너무 어려웠고, 그 어려움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키곤 했다. M은 아마 그런 나를 몰랐을 테니, 불편함 속으로 나를 아주 해맑게 초대했다. 물론 나는 그 초대를 거절하지 못했고.
그렇게 떠밀리듯 뛰어든 낯섦 속, 나는 세상과 나를 분리하는 답답한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며 내 세계를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확장해갔다.
카페란 그저 '커피 마시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고,
시간에 초조하게 끌려다니는 대신 시간을 잡아 순간에 묶어두는 법을 배웠고,
가만히 앉아 멍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닌 '충전'이 될 수 있음을 느꼈고,
익숙한 장소에서도 새롭고 낯선 것들을 찾아 발견하는 눈을 기르게 됐고,
목적지를 벗어나는 것이 '이탈'이 아닌 '탐험'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무계획도 계획이 될 수 있음을, 아니, 계획이란 것 자체가 아예 없어도 괜찮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M에게 가끔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너 덕분에 새로운 걸 많이 해본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내 말에 항상 "에이 뭘~" 하던 M은 어느 날 이렇게 얘기했다.
"야, 그렇게 끌고 다닌다고 다 끌려다니는 것도 아냐. 기꺼이 따라와 주는 게 나도 고맙지."
M은 모를 거다,
"기꺼이" 따라나설 수 있기까지 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잡음들이 터져 나오는지,
그 잡음들이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그렇기에 아직도 가끔은 마냥 기껍지는 않다는 것까지도.
그래도 M의 말에, 어딘지 쑥스럽고 간질간질하니 기분이 은근히 좋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M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길.
여담
돌아보면 나는 싫어하는 게 참 많았다.
주인을 향해 마음을 숨기지 않는 개에 비해
어딘지 솔직해 보이지 않는 고양이는 '간사'하다고 느꼈고,
'목적 없이' 시간이나 돈을 '낭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믿어
굳이 집을 두고 카페에서 멍때리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싫어하는 것들을 통해 나를 규정했고, 그렇게 규정된 나만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견고했던 고집의 벽은,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겪어내는 사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솔직함의 부재가 꼭 간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넘어 숨김의 미덕이란 게 있다는 걸 배웠고,
또 가끔은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대신 감각의 순간에 푹 잠겨 표류하는 게 필요함을 느꼈다.
많은 면에서 참 좁은 생각과 마음으로 좁은 세상을 살던 나를 견디며 참을성 있게 내 세계를 확장시켜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여전히 내 세상은 작고 폐쇄적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조금씩 누리게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누군가 —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 — 에겐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을 이제야 배워가며 느리게 확장하는 나 자신을 보면, 가끔씩은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젠, 예전처럼 '대체 나는 왜 이럴까?'는 생각 대신 '뭐, 그게 나인 것을' 하며 받아들이려고 한다.
동시에 이 '나'라는 사람은 얼마든지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 한다.
그래서, 내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내 세계를 깨뜨려 열어주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앞으로도 만나고 싶다. 계속, 더 많이.
M과 함께 놀러 갔던 가우도의 한 카페 '민들레는 민들레'의 터줏대감 짱아. 시크한 외모와 다르게 애교 많은 무릎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