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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Oct 12. 2016

16. 한숨은 아름다움

<A가 X에게>, 존 버거



아름답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1.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 네이버 국어사전


그럼 균형은 뭐고, 조화는 또 무엇일까?


균형: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조화: 서로 잘 어울림.

- 역시 네이버 국어사전


불충분한 설명이다. 아름다움은 단지 균형이나 조화를 이루어서 눈과 귀가 즐겁고 만족하는 상태가 아니다. 피카소의 가장 유명한 그림들은 균형이나 조화가 돋보이는 건 아니지만 아름답다. 재즈 애드리브도 그렇다.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을 모았기 때문에, 또는 오히려 어느 한 극단으로 치달았기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는 아름다움이란 한숨에 가까운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자꾸 한숨이 나오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움을 가장 잘 설명한 글은 예이츠의 '술 노래'라는 시다. 


술은 입으로 오고                            Wine comes in at the mouth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우리가 죽기 전에 알 것은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다만 이것뿐                                  Before we grow old and die

나, 잔 들어 입 맞추고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나,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짓노라         I look at you, and I sigh.                     

                    

사랑하는 사람과 눈 맞추고 와인을 입에 머금은 순간, 예이츠는 왜 웃지 않고 한숨을 지었을까. 그건 우리가 '죽기' 때문 아닐까. 아름다움은 우리의 유한함을 자꾸만 상기시킨다. 땅끝에서부터 천공까지, 불타는 빨간색에서 어스름한 보랏빛까지- 무한대로 펼쳐지는 노을의 어마어마한 스펙트럼을 볼 때 나는 한숨이 나온다. 갓 태어난 조카가 눈도 못 뜨고 제 엄마 품에 안겼던 날, 그때도 나는 한숨이 나왔다. 강원도로 간 캠핑에서 새하얗게 밤하늘에 박힌 별들을 보았을 때도 나는 한숨이 나왔다. 아름다움은 그저 보기 좋은 상태가 아니라, 나를 압도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하여 한숨을 쉬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더 할 수 없는 상태. 아무런 말도 배우기 이전의 내가, 단 한 가지 낼 수 있었던 어떤 울음소리가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상태. 나는 그런 게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내게 아름다움은 기본적으로 슬픈 것이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영원하게 가질 수는 없는 것. 


꿈을 꿨다. 우주가 한 권의 책처럼 펼쳐졌다. ~ 나는, 너무 행복해서, 받아 적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 <A가 X에게> 중


<A가 X에게>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어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마다 나는 잠시 한숨을 쉬고, 쉬어가야 했다. 특별히 슬픈 것은 아니지만, 책을 덮자 울고 싶었다. 존 버거의 다른 작품인 <결혼을 향하여>를 읽을 때에도 이런 마음이 들었었지. 자주 한숨을 쉬게 되었고, 책을 덮자 울고 싶었다. 존 버거의 글은 항상 아름답다.


<A가 X에게>는 A가 X에게 보내는 편지다. X를 기다리는 A의 이야기이며,  A와 X가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 반정부활동을 하던 두 사람이 검거되어,  X는 '이중 종신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을 선고받고 A는 복역 후 홀로 약국을 운영하며 나누게 된 편지글이다. 이중 종신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섭냐면 X는 죽어서도 감옥을 나올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감옥살이를 하는 것은 물론, 죽어서도 죽을 때까지의 나이만큼 시신을 감옥 밖으로 낼 수 없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A가 X에게>는 8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핸드폰이 있는 2000년대가 배경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투쟁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지를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이따금 등장하는 이슬람식 표현이나 중동스러운 묘사들을 보고, 아직 세상은 싸움 중이라는 것을, 어딘가에선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릴 뿐이다. 


내가 보낸 손 그림들을 창문 바로 아래 붙여 놓았다고 했죠.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들이 제멋대로 흔들린다고요. 그 손들은 당신을 만지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먼 곳을 보고 싶을 대 당신의 고개를 돌려주고,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은 거라고요. 갓 태어난 아기들이 울음 대신 웃음을 터뜨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상한 질문이죠. 우린 삶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 인생에서 나의 손은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었어요.

~

편지지 위에 손바닥을 놓고 그 윤곽선을 그려서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 모든 이야기는 또한 손의 이야기니까. 집어 들기, 균형 잡기, 가리키기, 합치기, 주무르기, 헤쳐 나가기, 쓰다듬기, 자는 동안 내려놓기, 자르기, 먹기, 닦기, 연주하기, 긁기, 쥐기, 벗기기, 짜기, 방아쇠 당기기, 접기.

- <A가 X에게> 중


죽어서도 감옥을 나오지 못하는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 설정만 보면 신파가 되려나, 싶지만 이야기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단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므로 이 책은 연애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X의 답장이 책에 등장한 적은 없지만, A의 편지 뒷면에 적힌 X의 메모들을 보면 A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엿보인다. 언젠가 써먹을 기회를 노리며, 아래의 말랑말랑한 문장들을 베껴 쓰는 재미도 물론 있다.


"눈을 수식하는 공식적인 형용사는 네다섯 개밖에 안 돼요. 갈색, 파란색, 옅은 갈색, 녹색. 당신의 눈 색깔은 사비에르 색이에요."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특정한 순간을 선택하는 당신만의 방식을 사랑해요."

- <A가 X에게> 중


그러나 연애편지라는 형식보다도, A가 지닌 특유의 낙천성이 이야기에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A와 X는 세계화, 자본주의, 획일주의 등과 싸우고 있다. 이런 적은 눈에 보이는 적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전투력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이들에게 더 위협적인 적은 '피로'다. 피로는 인내심이 아주 강하고, 아무리 강한 의지도 갉아먹는다. '가장 뜨겁던 희망도 붉은 먼지로 바꿔버리고,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에너지를 해치고, 무엇보다도, 피로는 조용함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죽음이 가지는 조용함이라는 사실에도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A는 끝끝내 피로에 지지 않고 살아남아, 하루하루를 X에게 전달한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A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X에게 새로운 하루를 또 전해야 했기 때문에.


A는 X에게 마을에 누가 새로 왔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적어 보낸다. 

이들의 일상에는 언제나 거대한 적과의 싸움이 배경처럼 깔려 있으므로 사건 하나하나가 무겁고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그런 사건을 옮기는 A가 감정의 끝으로 치닫는 법은 없다. A의 시선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투쟁 중인 사람 특유의 담담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저절로 한숨을 쉬게 되었다. 


스크롤이 길어지더라도 대략의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게끔 길게 옮겨 붙인다. A와 X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느껴봤으면 해서.


한평생을 살아온 집이 폭격당한 이발사의 이야기를 A는 이렇게 적는다.


일생동안 한데 모여있던 모든 것들이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이름을 잃어버린 거예요. 정신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것들의 기억상실증. ~ 우리는 며칠 전까지 그의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왔고, 그는 비질을 시작했어요. 그의 발아래가 아닌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이죠. 나는 본능적으로 그냥 내버려둬야겠다고, 그 순간만큼은 그를 몽유병 환자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몰랐어요. 한 남자의 일생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었죠. 

그는 발을 떼지 않은 채 계속 같은 곳만 쓸었어요. 마침내 비질을 멈춘 그가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손님 이발을 마칠 때마다 매번 바닥을 쓸었어요. 이발사가 지켜야 할 직업상의 제일 원칙 중 하나니까

그의 팔을 잡아주었어요. 그는 여전히 빗자루를 쥐고 있었고요. 그에게 쥐오줌풀(안정제 약초)을 좀 줘야 하는 걸까,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의 절망을 마주한 나의 직업적 반응이었죠. 우리의 직업이란 얼마나 사소한지!

- <A가 X에게> 중


정부군이 반군 잔당을 소탕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도 있다. A가 또래 여자들(이미 아줌마가 되어버린)과 이미 할머니가 된 여인들과 인간띠를 만들어 군대를 막아낸다. 자신들 몸집의 몇십 배는 되는 차가운 함포를 마주 보고, 그 어떤 무기도 없이 그저 서로의 손에 서로를 의지한 채, 맨몸으로 선 사람들의 두려움을 A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게 그때 우리들 각자가 해야 할 일이었어요, 계산 말이에요, 얼마나 뛰어야 할지를 계산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였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꼼짝하지 않겠다는 무서운 결심을 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의지력이 필요할지를 계산해야 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에요. 필요한 의지력을 과소평가하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대열을 깨고 나가기 십상이죠. ~ 그 두려움을 과대평가하면 일찍 지치게 되고, 그러면 끝을 보기 전에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서로 손을 잡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어요, 계산된 에너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

한 시간쯤 후에, 공장 안에 숨어있던 일곱 명의 동료들이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어요. 그리고 우리, 그들의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이 어땠는지, 다시 젊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기억하며 흩어졌죠. 

- <A가 X에게> 중


과부이거나, 고아이거나, 집을 잃거나, 총상을 입고 아파하거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잃거나 뭔가를 견디어내며 살고 있다. A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A는 희망을 믿을 줄 아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에 울고 슬퍼하더라도 다음날엔 또 일어난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거리에서 주운, 손잡이가 뼈로 된 훌륭한 칼을 A에게 선물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들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자살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A는 그 칼로 과일을 깎아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 A의 손에 들린 칼은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 그들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각 꾸는 꿈은 달라요. ~ 몸이 하는 기대도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처럼요. 

그들이 당신에게 이중 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은 믿지 않게 되었어요.

- <A가 X에게> 중


답장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편지를 계속해서 보내며 A는 이렇게 쓴다. 면회조차 거부된 감옥 속의 연인을 기다리면서 여인은 이렇게 쓴다. 결혼 신청 또한 번번이 부당하게 거부당하면서도 A는 이렇게 쓴다. 어쩌면 죽어서도 만나지 못할 연인을 기다리며, A는 여전히 희망을 믿고 있다고, 당신을 보는 날을 기다리노라고, 나의 아침은 당신의 부재로 시작되지 않는다고 감히 쓴다. 아마도 이런 기다림은 A와 X 사이에, 사랑을 넘어 전우애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기묘한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아래 장면은 X가 전투기에 A를 태웠을 때의 이야기다.


비행장을 벗어난 후 당신이 조종간을 조금 뒤로 당기며 가속기를 힘껏 누르자 ~ 모든 것을 아래에 남겨둔 채 솟아올랐어요. 그건 몸이 떠오른다거나 뭔가에 끌려 올라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에요. ~ 그건 자라는 느낌, 성장의 느낌이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고 망각에서 되살아날 때, 아마 우리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예요.  

~  내 몸 안의 장기들이 회전하며 흔들리는 걸 느꼈죠. 그때 내 몸안의 장기들은 해부학 책에 나오는 그런 것들, 각각 깔끔한 모양새에 정확한 이름 - 간, 심장, 자궁, 부신, 방광 - 을 가진 것들이 아니었어요. 그때 그것들은 실타래 풀리듯 풀리고, 뒤섞이고, 서로를 만지고 있었어요! 그것들 전부가 나였어요!

- <A가 X에게> 중


공중 곡예의 짜릿함을 어쩜 저렇게 재미있게 표현했는가는 둘째 치고, A는 X가 자신을 태우고 공중 곡예를 할 것을 허락한다! 최고출력으로 수직 상승하고 난 뒤 비행기의 엔진을 꺼서, 도로 수직 낙하하는 것을, 땅에 부딪칠락말락하는 순간까지 떨어지는 것을 허락해버린다! 다시 말해 A는 X에게 주저없이 목숨을 내맡기는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그래서 더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사막이 배경에, 처음 보는 이슬람식 표현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있을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88만 원 세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일의 사랑과 싸움.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잠은 최초의 집이에요, 지붕도 없고 벽이나 침대도 없는 집. 그런 것들은 뒤에, 잠에 영감을 받아 등장하는 거예요. 오늘 밤, 제 생일 다음날, 당신을 그 맨 처음 집으로, 내 사랑, 안내할게요. 그 괴물 같은 문 밑으로 그 잠을 밀어 넣을게요, 그 안에 내가 있을 거예요. 

- <A가 X에게> 중


그리고 한 장을 넘기면 책의 끝장이다. 거기엔 '오늘 밤의 탈출도'가 그려져 있다. 둘이 무사히 탈출을 했을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존 버거조차도. 그렇기에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책 속의 세상과 여기 내가 앉은 세상의 이격이 엄청났다. 책의 여운은 오래갔다. 그럴 때 나는 그냥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이 책이 왜 이리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또 무엇이 그리 아름다웠는지 말할 수 있는 정도로 논리적이지 못하기도 하고. 다만 나의 한숨을 나의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A의 편지를 천천히 넘겨보며, 그 뒤에 새겨진 X의 낙서를 곱씹어보며. 맘에 드는 문장에선 멈춰가며 한숨 쉬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았으면, A와 X의 세계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느껴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는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크니까. 같은 것을 느낀 친구들과 서로 한숨을 주고받는 것으로 내가 느낀 무력함을 나눠보고 싶다.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 <A가 X에게> 중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는 한숨이 나올까. 언젠가 나는 죽을 것이고, 그런 뒤엔 잊힐 거라서 그런 것일까. 존 버거의 문장은 왜 아름다울까. 이 글을 쓰며 그의 문장을 옮기는 동안도 나는 여러 번 한숨이 난다. 그것 외에는 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1. 존버거를 처음 시작하시는 분

2. 존버거의 책을 읽다 포기한 적 있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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