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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Oct 26. 2017

엄마는 호주머니에
지옥을 숨기고 다녔다

 
엄마는 호주머니에 지옥을 숨기고 다녔다.
새벽에 깨어나 거실로 나가면, 집 그림자에 잠긴 엄마가 혼자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TV 소리도 불빛 조금도 없었다. 창밖 멀리로는 북한산이 보였다. 북한산의 암벽들은 어둠 속에서도 허여멀건하게 빛났다. 그건 꼭 다친 병사의 몸 같았다. 군데군데 뼈가 드러난.


새까만 집에서 엄마의 눈만 간신히 빛났다. 엄마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짙은 그림자가 나는 서늘했다. 엄마야말로 이 집안의 그림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저 그림자가 나한테까지 뻗쳐들까 무서웠다. 무슨 일 있냐고, 말해보라고. 화장실에 가려면 엄마를 지나쳐야 하면서도 나는 말하지 않았고, 엄마도 내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우리는 서로를 모른 체 했다.
 
엄마는 사업을 했다. 항상 잘 된다고만 했다. 그렇게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건지, 어린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나로서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 말이 거짓일 경우에 내가 부담하게 될 짐도 싫었다. 
 
정사장, 우리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빨리 돈 줘. 더 못 기다려.
좀만 더 기다려줘요 거의 다 됐어요 정말
이게 지금 몇 달짼데, 그 말만 믿다가 정사장보다 우리가 먼저 죽겠어.
나도,나도,나도!나도숨좀쉬자구요나정말죽을것같아요,하루에도몇번씩다불지르고죽어버릴까생각해요나,나진짜사장님이그렇게말하지않아도힘드니까좀만 좀만더 기다려줘요 아직 갚을 날도 아니잖아요 열심히 하는 사람, 그마저도 무너지게 만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엄마 방에서 잠들었던 어느 날,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마의 핸드폰이었다. 남자의 정직하고 당당한 요구에 엄마는 오열하듯 답했다. 나는 숨죽이고 그 대화를 모두 들었다. 한 문장이라도 놓칠까 조심하며. 남자가 뭐라고 달래다가 이내 전화를 끊었다. 엄마, 울겠지. 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기다렸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한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거실로 나갔을 뿐이었다. 나는 얼른 엄마가 돌아와 다시 누웠으면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 불 지르고 죽어버릴까 생각해요. 가스호스를 자르러 간 건 아닐까. 창밖으로 몸을 던진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거실에서는 가스 새는 소리도, 바람 소리도, 우는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방에 누워 기다렸다. 그리고 곧 엄마가 방 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엄마는 지금 북한산을, 그 굳센 산의 다친 뼈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은혜야, 이거 봐, 내 중학교 친구. 딸내미 결혼했대. 예쁘지? 얘네 엄마가 맨날 내 도시락까지 싸줬었는데. 얘는 내가 너무 멋있대. 사장님 됐다고.
 
다음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폰으로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엄마는 어디서 배웠는지 동창모임 SNS를 시작했는데, 중학교 동창들이 뭘 하는지, 아는 사장님들은 어떻게 자식 결혼을 시켰는지 내게도 보여주는 게 낙이었다.
 
엄마는 뭐 올렸는데?
 
나는 엄마가 그런 마음으로 어떤 글을 남겼을지 궁금했다. 카톡도 못하는 엄마가 SNS에 뭐라고 썼을까. 엄마가 올린 사진들을 보여줬다. 엄마의 작은 공장에서 찍은 엄마였다. 공장 한켠에 핀 함지박만한 꽃 옆에서 엄마는 수줍게 웃었다. 다른 엄마들처럼. 꽃놀이, 단풍놀이 - 각종 식물 옆에서 한쪽 다리를 들고 수줍게 카메라를 의식하는 또래의 여자들처럼. 엄마도 그렇게 웃었다. 그리고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엄마의 친구는 그 사진에 정말 댓글을 남겼다.
 
지선^^ 난 니가정말 멋잇다. 가장 멋진내칭구.
 
엄마는 어둠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멀리 북한산을 노려보던 그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하하하 웃었다. 이 사람들 진짜 웃기지. 이런 것도 봐야 남들은 무슨 생각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는 거 아냐? 나도 많이 봐야지. 엄마는 새로운 경영학 이론처럼 밴드며 카카오스토리를 소중하게 들여다봤다.
 
엄마, 그런 걸 SNS라고 해. SNS를 한글 키보드로 치면 눈이 되는데, SNS에 올라오는 게 다 진짜는 아니야.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지 알 수 있는 것뿐이야. 그래서 그냥, 이건 수많은 눈이야. 엄마한테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바로 가져갈 그 사람들이 엄마를 쳐다보는 눈처럼, 이것도 그냥 수많은 눈이야.
 
이번에도,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가 밴드 틀어줘, 하면 밴드를 켜주고 비밀번호를 까먹으면 새로 설정해줬을 뿐이다.
 
엄마의 호주머니엔 핸드폰이 있었다. 그게 울릴 때마다 엄마는 지옥이었다. 돈 갚으라는 사람, 돈 달라는 사람, 돈 내라는 사람, 모두가 칼눈을 뜨고 엄마를 지켜보았다. 엄마의 호주머니엔 핸드폰이 있었다. 그걸로 알콩달콩 행복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먼저 성공한 사람들이 성대하게 자녀의 결혼식을 치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건 엄마에게 지옥이었을까, 아니면 지옥 틈으로 열리는 실낱같은 빛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엄마의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내가 그것을 본 적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다. 하하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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