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틸킴 Oct 25. 2018

29. 펭귄 똥 싸는 소리, 들어봤나요?

<물 속을 나는 새>, 이원영

인생에서 동물에 대한 지식이 가장 풍부한 시기는 아마도 3~10세 쯤이 아닐까. 그 이후로는 (주로 남성의 이야기일 텐데) 아마 50세 이상? 우리 조카와 아빠를 보면 참으로 그렇다. 생후 28개월 조카는 요새 달팽이에 푹 빠져있다. 그전까지는 펭귄이었는데, 조금 더 자라면 여느 또래들처럼 공룡에 빠져들 것이고 조카의 책장엔 아직도 각종 동물 시리즈가 한참 남아있다. 한편 생후 개월 수를 세기 어려운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의 TV에는 채널이 세 개뿐인 것 같다. 뉴스, 테니스, 동물.


나는 마지막으로 동물 책을 깊이 읽어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물론 이번 달엔 펭귄에 대한 책을 읽어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건 논외로 치고.) 아마 늦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끝일 것이다. 달팽이의 먹이나 짝짓기, 배설에 대해 소상히 적어놓은 책들을 순전한 흥미로 읽어본 건. 그 이후로는 ‘책’을 읽는다고 하면 인간에 대한 것 뿐이었다. 인간의 사랑, 인간의 죽음, 동물을 연구하는 ‘인간’,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


내 책장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우화의 주인공들 뿐이다. 어른의 세계에 동물이 나타날 땐 주로 교훈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 그래서 ‘물 속을 나는 새’를 읽고도 한동안 이 책이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는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까먹었다. 왜 펭귄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펭귄 같은 동물의 삶에 빠져들까.


뒤뚱이는 걸음걸이. 도무지 공격성이라곤 없어보이는 얼굴. 등은 까맣고, 배는 하얀 단순한 색배열. 모든 끝이 둥글둥글한 형태감. 차가운 얼음 위에 서로 뭉쳐있는 모습. 우리는 펭귄의 이 모습을 너무 좋아한다. 문제는 이 모습만 좋아한다는 것? 펭귄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온갖 곳에 자신을 본 뜬 인형이 있고, 자신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있고, 그러면서도 펭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 털 없는 짐승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도 이려나.


이 책은 인형 펭귄을 살아있는 펭귄으로 되돌려 놓는다. 펭귄이 얼마나 오래 잠수할 수 있는지, 새끼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큰 시련을 참아내는지, 짝을 고를 때는 또 얼마나 신중한지, 이미 고른 짝과 헤어져야 할 땐 얼마나 냉정한지, 자신의 둥지에 불쑥 나타나는 인간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우리가 몰랐던 펭귄의 삶을 보여준다.


펭귄의 똥 누는 압력을 계산해 이그 노벨상을 받은 마이어로쇼프 교수의 그림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추측컨대 대부분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펭귄의 똥’이다. 귀여운 펭귄의 똥이라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펭귄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펭귄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 펭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펭귄은 똥을 눌 때마다 인간보다 8배 강한 힘을 주는데 그렇게 해서 똥이 나올 때 나는 소리는 ‘뿌지직’에 가깝고, 똥은 40센치 정도 멀리 날아간다. 냄새가 꽤 고약해서 트라우마를 입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펭귄의 똥에는 아직 소화되지 못한 신선한 갑각류들이 가득해 어떤 바다갈매기들은 이 똥을 주식으로 삼는다.


자연의 물질은 순환한다.


펭귄의 배설물에서 이끼가 자라고, 그 이끼에서 미생물이 자라고, 미생물들은 플랑크톤과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펭귄들이 그것들을 먹고 또 자라고. 자연의 구성원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인간만 모른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걸, 지구의 나머지 주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 자꾸 까먹는다. 용감한 인간들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느라, 숲속에서 마주친 불운을 없애느라 수도 없이 많은 생태계를 파괴해버렸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개개인의 선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기적임이야말로 우리 종족의 특징이다. 인간만이 다른 동물들의 삶을 저 좋을대로 해석해 교훈을 만든다. 귀여운 물새에게 제멋대로 펭귄이라 이름 붙이고, 펭귄의 똥은 제멋대로 상상하지 않고, 그 냄새에 제멋대로 놀란다.


왜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연구할까. 추운 극지를 굳이 굳이 찾아가 펭귄의 삶을 탐구하고, 똥을 받아내는 이유가 뭘까. 경제적 자원화를 위해서? 과학 기술에 접목하기 위해서? 그런 건 너무 인간적인 이유. 아마도 대답은 그냥, 물 속을 나는 새가 있다니, 너무 신기하지 않아?


펭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된다. 그냥 거기 있으면 된다. 남극의 두꺼운 얼음 위에 살아가면서, 새끼를 낳고 물 속을 날면서, 맛있는 크릴 새우들을 잔뜩 먹으면서.


(한낱 인간은 오늘도 펭귄의 삶에서 끝내 교훈을 발견해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고 만다.)



매거진의 이전글 28. 본격, 다음에서 네이버 웹툰 영업하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