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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Apr 26. 2020

대학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 4가지

대학과 진로

입시를 앞둔 고딩들. 또는 전과를 고민하는 대딩들. 그것도 좀 생각 있는 학생들이나 관심 가져줄 법한 글이겠지만 이미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심어주는 글이 되길 바란다.




대학 전공은 엄청 다양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 고딩들한테 새로운 것들이다. 나는 학부 때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에서 2년간 경제를 공부한 경험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상상한 것과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리 좀 배우고 들어간 나도 당황스러운데 전혀 경험해 본 적도 없는 과목이 수두룩한 의대, 법대, 치대, 경영대, 공대 등 심지어 인문사회 계열까지..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국영수, 사탐, 과탐만 공부한 불쌍한 고딩들한테 아무 예고편이나 티저도 없이 대충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게 참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19살 아이에게 앞으로 뭘 공부해서 어떻게 먹고 살 건지 밥줄의 뿌리를 정하라고 하는 것만큼 가혹한 행위는 없다고 본다. 솔직히 이 정도면 폭력 아닌가 싶다. 그 나이에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게 정상이고 나이 50 먹을 때 까지도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러다 보니 그냥 대학 타이틀만 보고 학과는 대충 골라서 지원하는 실수도 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해보니 더욱 뚜렷해졌다.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해봐야 하는지. 그래서 정리해 보았다. 우리 후배님들이 전공 선택을 하기 전에 꼭 알았으면 하는 것들.


1.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는 대학생은 10명 중 3-4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뭔가 내 글이 너무 침울하고 다크 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이것이 현실임은 부정할 수 없다. 진로에 관심 없는 대학생 100명 중 3명은 지금 전공에 만족하지 않고 바꾸고 싶어 한 다는 것.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 중에서도 절반만이 자신의 전공에 만족한다. 진로에 대한 확신이 있음에도 4명 중 1명은 다른 전공을 택하려 한다 것이 현재 우리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출처> 잡코리아 2019

위 통계자료를 보면서 "아 역시 헬조선" "노답이다" 등등 여러 코멘트를 달면서 한국 교육시스템을 탓하고 싶겠지만 이건 절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3명 중 1명은 전과 경험이 있고 심지어 10명 중 1명은 2번 전과한다고 한다. 아시아권 대학들은 서양 대학만큼 전과가 쉽지 않을 뿐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후회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https://www.insidehighered.com/news/2017/12/08/nearly-third-students-change-major-within-three-years-math-majors-most

가장 이상적인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강의를 수강해보고 탐구해 본 후에 전공을 최종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자율전공학과" 같은 프로그램이 (해외 대학에서는 Liberal Arts라는 개념으로 첫 1-2년은 다양한 교양과목을 듣고 3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 시스템이) 인기를 끌었으나 학교가 떠안는 비용과 리스크가 커서 그런지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현실은 우리가 속해 있는 보편적 교육 체계에서 고3 때 선택하고 지원한 학과가 미래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걔다가 대부분이 후회한다는 것이 문제다.

 

2. 내가 전공하고 싶은 건 기초학문인가 실용학문인가?


고등학교 때 듣는 수업들은 뻔하다. 크게 보면 언어, 수학, 과학, 사회, 역사, 경제, 미술 등 기초/순수 학문(Basic/Pure)들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기 있는 전공들은 공학(Engineering), 경영학, 디자인, 건축, 의학, 신문방송학 등의 실용/응용 학문(Practical/Applied)들이다. 


순수학문 보다 응용학문이 비교적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쉽게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취업이다. 취업을 목적으로 학위를 따는 것이라면 응용 학문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기초학문을 실용적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응용해서 만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채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입사 후 조금이라도 빨리 업무에 적응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학과를 전공한 인재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순수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은 연구직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나 대학교에 단기적으로 돈을 벌어다 주지는 못하겠지만 장기적인 발전과 혁신을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두 번째는 공부가 싫고 지겹기 때문이다. 사람들 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생애 가장 열심히 공부를 해본다.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공부가 싫증 나기 시작하고 특정 과목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될 경우가 높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대부분 순수 학문이라는 것. 대학에서 만큼은 이 순수 학문을 공부하기 싫을 것이다. 경영, 디자인, 신문방송 등등 아직 공부해 본 적 없는 상상 속의 학과들이 자연스럽게 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순수학문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어 그 학과들을 피해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3.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모르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전공했느냐가 대학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궁극적으로 취업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채용 시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요인은 아직까진 "전공 전문지식"이 라고 한다. 전공을 살리는 길이 취업에 더 유리하기에 자신과 잘 맞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신중히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고 자아성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게 올바른 길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이것은 은퇴할 때까지 해야 할 인류의 숙제 일 수 도 있다.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엇갈릴 때도 너무 많다. 그럴 때 나는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동시에 잘하기까지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취업에 도움이 되는가까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아마 우리 머리는 터질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 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가? 정말 잘하는가?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확신할 수 없다면 "모르는" 분야이다. 또한 아직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과목/전공도 모르는 분야에 속한다. 모르는 게 많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고등학생 때 얼마나 빨리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하나씩 생각을 정리하고 신중히 분류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4. 전공을 살려 취업한다 해도 어차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지금까지 우울하고 슬픈 얘기밖에 없었으니 조금 힘이 되는 말을 한번 해보자면, 전공이 취업과정에 있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는 사람은 절반 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공을 살리는 게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취준생 대부분은 전공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전공을 살릴 수 없다면 대학교에서 공부한 4년의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 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공을 살린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회초년생들은 입사 1-2년 후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직장 실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임을 깨닫는다. 전공을 살리는 것이 초기 지식 습득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어차피 회사 업무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나 또한 졸업 후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지 않았다 (아주 관련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내게 전공 선택에 대한 후회가 남아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취업 후 회사 동료들과 같이 일하다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배경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그중 다수도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각자의 전공에 따라 그들만의 특성과 강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4년 동안 같은 과 학생들과 공부하며 형성된 익숙해진 사고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 상식과 사고가 회사에 가니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비록 지금 업무와 크게 관련은 없지만 내 전공 덕에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강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에게 친근한 스타 역사 강사 설민석 선생님이 사실은 연극영화과 전공자라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연극영화과가 어떻게 역사 강사라는 직업에 도움이 될 수 있나 고민할 수 도 있겠지만 그 배경이 있었기에 설민석 선생님만의 특유의 연극 같은 강의 스타일로 많은 학생들과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전공을 택하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명확하게 정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얻게 되는 경험은 특별할 것이며 졸업 후 직장생활에 주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아무런 경험도 없이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나눈 위 4가지 것들이 꼭 전공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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