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엽기가 그지없는 녀석은 홍대 공연장 겸 카페 겸 바 언플러그드의 마스코트 언돌이다. 늘 심드렁~ 하고 무뚝뚝한게 어찌나 귀여운지 심지어 요즈음 살이 많이 쪄서 저렇게 누워있다가 돌아눕는데 뱃살이 출렁~ 하고 물결을 치는데 정말이지 하앙
공연해야 해서 오랜만에 찾은 언플러그드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져 있었다. 지옥에서 온 블루스맨 태춘 오빠는 2집 활동에서 함께 활동하는 밴드 이름을 '바퀴벌레들' 로 지었다. 그래서 나는 '김태춘과 바퀴벌레들'이다. 원래는 라쿠카라차 였는데 김태춘과 바퀴벌레들이 더 뭐랄까, 더 명확한 시각적 이미지를 줘서 맘에 든다.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
소꿉놀이 어린이들 뛰어와서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 병정들도 싱글벙글
빨래터의 아낙네도 우물가의 처녀도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희한하다 그 모습
라쿠카라차는 바퀴벌레란 뜻이다.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총칼에 맞선 멕시코 시민들이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승리하겠단 의지를 담아 불렀던 노래다.
이날 공연에서 왠일로 멤버 소개를 하던 태춘 오빠는 '드럽게, 끈질기게, 살아남아 봅시다'라고 했다.
우울하고 험한 시대를 어떻게 따듯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포장할 수 있겠냐며 험한 말을 던지지만 결국 자신도 그 시대 속에서 버둥대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아서, 오빠의 노래가 좋다. 생존을 위해 수단을 가리진 않지만 방법을 바꾸진 않는 고집쟁이.
아침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 우유로 끓인 오트밀에 구운 해바라기씨.
나는 자상한 사람이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크게 대가 없이 해주고 싶어 한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겐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싸우기보다 지는 게 편해서 말다툼도 잘 안 한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보단 듣는 게 좋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보단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걸 좋아한다.
나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근데 요즘은 이러면 안 되나 보다.
얼마 전엔 잠시 말다툼이 있었는데 친구한테 "나 정말 어이없게 얼마 전에 누구랑 쫌 싸웠어 -ㅅ-" 했더니 대번에 "니가 싸웠을 정도면 벌써 나랑은 난리가 났겠네"라고 하더라. 아휴 근데 뭐 어쩌겠는가 하두 사람 만만히 보는 게 보여서 짜증 나니까 받아치긴 했는데 두어 마디 받아쳤드만 훅 피곤하고 귀찮아서 전의가 사그라드는데... 얘가 이겼다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대단한 애도 아니고...
"쎈언니" 가 새롭고 강한 여성상이 된 지 이제 몇 년 된 것 같다.
최근 접한 쎈언니는 한대음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50만 원에 판매한 '이랑'이었다. 나는 불편했다. 어딘지 모르게 계속 불편했다. 주섬주섬 이런저런 반응을 주워다 보기 시작했고 왜 불편한지 감을 잡았다.
한대음은 꽤나 부던히 노력하는 단체다. 택도 없는 돈으로 시상식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더라. 나는 "돈 없으면 제발 하지마" 하는 쪽이라 이거 되게 싫어한다. 돈이 없으니 이 사람들은 당연히 줘야 하는 만큼의 돈을 주지 못하고 그 대신 가치와 취지를 설명하며 동료가 되지 않겠는가? 설득하는데 당신의 가치는 보통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할만한 취지를 유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더라. 한참 이런저런 돈 없는 단체에서 전화를 받던 당시 너무 짜증이 나서 "회식 안 하세요? 회식하시죠? 본인들 먹고 마실 돈은 있는데 이 돈은 없고 참 가치 있죠?"라고 받아치던 나이지만 천성이 착해서 결국 한 어린이 단체에 뭐 좀 해줬다. 무료 봉사였다. 얼마 후에 택배로 뭔 투박시럽게 생긴 컵이 하나 왔다. 거기서 보낸 거였다. 감사하다고 적혀있었다. '아니 이걸 만들 돈으로 돈을 달라고...-_-'
그래 트로피. 아무리 값을 후려쳤어도 트로피 만드는데 돈은 들었을 테고, 이랑 씨는 이 트로피 만들 돈으로 차라리 상금을 주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거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트로피를 만들었건 거기에 담은 건 '그들의 가치'일 뿐 거기에 이랑 씨가 동의할 필요 역시 없다. 하지만 한대음의 제스춰 만큼은 꽤 괜찮은 것 아니었나. "축하한다. 당신의 창작물이 올해 나온 것들 중 가장 멋지다." 하는 존중 말이다.
그들은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게 한 후 우승자를 가린 게 아니니 상금을 반드시 줘야 할 필요가 없다. 한대음이 건넨 트로피는 수고한 예술가에게 보내는 축하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택도 없는 보수를 받고 일을 한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은가. 그 시상식을 만든 사람들 말이다. 한대음이 무보수로 이랑 씨에게 원한 건 그렇게 만들어놓은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냥 무시해도 될 일이었는데 굳이 눈 앞에서 보란 듯이 니들 하는 거 재미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며 걷어차버렸다. 그게 불편하다. "이랑이 판매한 건 트로피 일뿐, 한대음의 명예가 아니다"라고도 하지만 선물이 맘에 안 든다고 굳이 준 사람 앞에서 되파는 건 좀 못됐다.
(한대음은 기준을 모르겠는 시상식이라 딱히 응원하진 않는다. 주류 비주류를 따지지 않고 그저 예술성에 입각하여 시상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비평가 협회상" 같은 제목으로 인디에 힘을 실어주면 좋겠는데 너무 기준 없이 온갖 장르를 아우르려고 한다.)
누가 먹고 버린 서울우유 초코우유곽이 날아오길래 걷어찼다.
여튼 뭐 그랬다. 둘 다 싫다고 -ㅅ-
그냥 난 옛날 사람인가 보다... 생각한다. 나는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게 불편하다. 눈치 보지 않고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 책임져야 되잖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