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by 정성진 musicalbank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이 가끔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다. 특히, 명절 연휴에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서울이 고향인지라, 딱히 갈 곳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다른 것을 부러워했다.

그중 하나가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을 부러워하곤 했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시골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대부분 학생들의 학업뿐만 아니라, 전인교육에 힘써주셨다는 것이다.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에 내려갈 때면 종종 모교에 들려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다른 곳에 근무하시거나, 정년 퇴임하신 분이 많지만, 어려서 뛰어놀던 교정과 교실도 둘러보고, 친구들과 간단한 운동도 하곤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을 스승이라 칭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안 좋은 것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좋은 기억뿐이다.

물론,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성취욕이 강하신 분이었고, 학생들을 잘 이끌어 각종 경진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인정도 받고 계셨다. 그런데, 교내 합창대회를 앞두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나는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 그즈음 나는 또래들보다 변성기가 빨리 온 탓에 자신감이 없이 노래하곤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께서는 목소리는 내지 말고 입만 뻥긋거리라고 하셨다. 아마도 합창대회이니, 전체적인 하모니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우리 반은 합창대회에서도 우수상을 수상했지만, 그때의 상처가 너무나 커서, 4학년 내내 음악시간은 너무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학과 수업 외에도 캠핑 수업과 같은 이색적인 수업도 진행하셨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작은 것 하나에도 칭찬을 해주시는 분이었다. 그분께 받았던 칭찬 중의 하나가 리코더 연주를 잘한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 칭찬으로 나는 방과 후에는 마루에 앉아 리코더 연습을 했었다.

그 칭찬 한 마디로 인해 지겨웠던 음악시간이 다시 즐거워졌고, 지금도 음악과 관련 있는 뮤지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학년 때 선생님을 미워한 적은 없었지만, 학급 전체의 성적과 함께 어린 학생의 여린 마음도 챙겨주셨다면 더욱 좋아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한 분은 직업으로서의 선생님과 다른 한 분은 스승으로서의 선생님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스승의 날'이 되면, 그리고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안부를 묻는 수많은 문자와 연락이 오고 간다. 나 역시 옛 은사님들과 사회생활하면서 인연을 쌓아나가는 멘토 분들께 인사를 드린다. 그런데, 빼놓지 않고 내게 안부인사를 전해 오는 친구들이 있다.

나의 소대원과 중대원으로 같이 근무했던 친구들이다. 그중에는 병사로 근무했던 친구도 있고, 간부로 근무했던 친구도 있다. 소대장 시절, 소대원과는 1~2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아직까지 친한 형처럼 대해주는 소대원들이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 그중 한 친구는 공병 소대장 시절에 공사 감독병으로 근무했던 친구인데, 나와의 인연으로 전역 후 전공까지 바꿔서 지금은 건축 관련 회사에 근무 중이다.

내가 맡은 소대의 임무 완수가 최우선 목표였지만, 무엇보다 소대원들이 군생활에 대하여 즐겁고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소대원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소대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20년 세월이 지나서도 서로를 챙겨주는 인연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요즘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직급이 모두 매니저이다. 대부분의 다른 회사들도 수평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직급을 없애고 있는 추세이다. 장점도 많겠지만, 두드러지는 단점 중의 하나가 스승과 같은 선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잔소리하는 선배를 싫어하니, 선배들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굳이 나서서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오차장과 김대리를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얼마 전 예능프로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z세대의 인터뷰 내용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만 스승인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의 상사도 신입사원에게는 스승 역할을 해야 하며, 군에서 간부 역시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말은 고루한 꼰대 아저씨의 잔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솔선수범하며, 때로는 친형처럼, 때로는 컨설턴트처럼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상담해줄 수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 나 자신만 챙기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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