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첫째 날, 치앙마이에 그가 왔다.

by 이태화

오늘 아침 눈을 뜬 순간, 마치 우주가 새롭게 펼쳐진 기분이 들었다. 한참 승무원으로 일했을 때 자주 들었던 느낌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내야 할 때, 그러다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방금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마치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여행하고 있는 것 같은 짜릿한 기분! 나는 그 기분이 참 좋았다.

서울에서만 사는 지금은 다소 삶이 단조로워졌다. 그러나 반복되는 매일이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일 매일이 같은 날처럼 느껴진다면 아마도, 오늘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마치 매일 아침 새 우주가 열렸을 때 처음으로 가장 좋은 것을 보는 셈이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침부터 좋은 것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사람은 맥락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그 사람을 계속해서 열심히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인간의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아침도 성공이다!

우리는 눈 뜨자마자 수영장에 수영을 하러 가기로 했다. 나 같은 도시 사람들에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대충 샤워하고 물속에 풍덩 들어가는 일은 세계 최고로 짜릿한 일이다. 나는 사람의 본성은 그저 쭉 자유롭고 싶은 것이라고 언젠가부터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데 바다나 수영장 같은 것을 생각하면 괜히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7월의 치앙마이는 덥지 않아 좋지만 자외선 지수는 굉장히 높다고 한다. 우리는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밤 기운을 듬뿍 머금은 수영장 물은 몹시 차가웠다. 나는 물속에서 태화 코치에게 업힌 채로 이리저리 편히 유랑했다. 내 생각에 좋은 남편감은 모름지기 등이 따뜻한 남자다. 그래야 업혔을 때 따끈해서 좋다(?).

이쪽으로 가라는 둥 더 멀리 가라는 둥 주문을 하다가 좀 미안해져서 “운동하니까 좋지, 어때?” 뭐 이런 소리를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1g 정도 덜어냈다. 우리는 그로부터 몇 분간 바다를 표류하는 돛단배 마냥 수영장을 거닐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얼른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치앙마이는 지구 상에서 최고로 멋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치앙마이에 여러 번 왔었다. 그러나 태화 코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치앙마이를 최고의 여행지로 추천해왔다. 그런 이곳에 태화 코치하고 오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빨리 보여주고 싶다. 치앙마이는 맛있는 음식과 독특한 볼거리들로 가득한 곳이다. 자기 살던 곳에서 짊어졌던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한가하게 노닐 수 있는 곳이 바로 치앙마이다. 우리는 취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태화 코치도 분명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첫 아침 식사로 무엇이 좋을지는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누들이다. 면요리라면 무엇이든 수용적인 태화 코치는 분명 치앙마이의 면요리도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역시 올드타운에 있는 *블루 누들이 다다. 소고기가 가득 들어있는 누들을 큰 사이즈로 시켜줘야지. 양 볼에 누들을 가득 물고 있는 태화 코치를 상상해보니 행복해졌다.

실은 태화 코치가 오기 전부터 나 혼자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 놨었다. 계획에 따르면 오늘은 여러 가지로 바쁜 날이다. 액티비티도 예약해야 하고 멋진 카페도 가야 하고 올드타운에 있는 *노스게이트 재즈카페도 가야 한다. 수연, 힘내자!

우리는 신나게 누들을 먹고 여행사를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식당이 있는 골목을 조금 걸어 나오자 한인 여행사가 나왔다. 맙소사. 현지 액티비티를 한국 사람에게 예약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한국 직원은 황송하게도 영상까지 틀어주며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자기 좋은 대로 래프팅과 짚라인을 하나씩 골랐다. 생각보다 너무 수월하게 예약해버렸다.

여행사 문을 나서며, 이곳에 사는 한국인의 삶이 어떨지 잠시 상상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이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니까 지구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혼자일 때는 맘 편히 몇 달간 외국에 머물렀던 적도 있다. 태화 코치를 만난 이후로는 ‘이곳에서 태화 코치와 함께 살면 어떨까?’ 생각한다. 나 혼자라면 그저 그런 곳도 그와 함께 살면 괜찮을 것 같다. 어디에서 사는지 보다 누구와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했었는데 태화 코치를 만나 꽤 즐겁게 살게 된 듯하다.


우리는 카페에 갔다. 올드타운에 있는 박물관 정원에 있는 카페인데 여우비를 머금은 풀들이 싱그럽게 피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썼다. 그에게 9일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그려 놓은 계획표도 보여주었다. 여행사를 돌아보는데 한두 시간 걸릴 줄 알았는데 15분 만에 해결하고 보니 시간을 번 셈이 되었다. 원래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저녁을 먹은 후 노스게이트 재즈카페에 가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태화 코치도 나도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첫날밤이 될 것 같았다. 가벼운 칵테일보단 위스키 언더락이나 데낄라 같이 독한 술이 좋겠다고 미리 생각해 두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에 없었던 나이트마켓에 갔다. 액티비티를 하는데 필요한 물품들, 가령 아쿠아 슈즈나 방수가 되는 옷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노스게이트 재즈카페는 결국 가지 못했다. 괜찮다. 다음에 가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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