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홍 글씨" (1995. 11. 11. 개봉)
감독 : 롤랑 조페
배우 : 데미 무어(헤스터 프린), 게리 올드만(딤즈데일 목사), 로버트 듀발(로저 칠링워스)...
* 1996년 11월 29일 (금) 10:50 그린라이프 비디오방, 혼자서
"원작을 망쳤네", "최악의 영화" 운운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사실 나 역시 내가 이 영화를 돈 주고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어제 "The Scarlet Letter"를 번역본으로 다 읽었던 차라, 영화로도 한 번 보고 싶었다.
음... 뭐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우선, 원작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점에서는 동감이다.
영화부터 본 사람이 있다면 "주홍 글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기에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어차피 원작 그대로를 옮기지 않는 한, 영화란 그만큼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질 테니까.
그럼, 이제 그 감독의 상상력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롤랑 조페 감독이 펄과 칠링워스에 대한 해석을 포기했다고 본다.
그토록 미스테리적이고, 야릇하면서도, 어려운 두 주인공을,
칠링워스는 인디언 속성을 가진 미치광이로 그려 자살하게 만들고,
펄 역시 배에 마녀의 자국이 있는 말도 못 하는 어린애로밖에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감독은 권선징악에 의거하는 듯 하다.
그 연인들은 행복해야 한다는 사고는 다분히 현대적이라 할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 내가 원작을 읽으면서 그 시대적 사고에 결코 흡수될 수 없었던 것과도 흡사하다.
그다지 크게 죄악시될 것 없는 이 시대에서 보기엔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놀랍게도 감독은 많은 부분 나와 생각을 같이 하고 있는데,
바로 딤즈데일을 원작보다 훨씬 강인한 인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롤랑 조페 감독도 지독하게 허약해빠진 그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그만큼 원작에서 보여진 딤즈데일의 종교적 고뇌와 신체적, 정신적 파멸을 감소되었다.
아니, 사랑에 빠져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잊은 듯 했다.
참으로 영화와 원작은 비교할 게 많은데,
헤스터를 강간하려던 그 남자는 순전히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나온 것 같고,
스칼렛 레터 'A'가 고위 관리 부부의 침실에서 처음 고안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A'가 주는 의미를 단순한 벌, 내지는 수치심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헤스터의 선행으로 'A'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부분은 왜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작에서도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성급히 빼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칠링워스의 역할, 아니 캐릭터는 원작이 훨씬 더 낫다.
실제로 말로 복수를 외치고, 칼로 살인을 하는 모습보다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옆에서 목사의 파멸을 종용하는 것이 훨씬 더 잔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다시 감독은 왜 칠링워스의 신분을 처음부터 노출시켰나 하는 점이 의문시 된다.
헤스터의 이미지가 강인한 것은 사실이나, 데미 무어의 떡 벌어진 어깨와, 터질 것 같은 몸과, 오기에 받힌 표정 등은 오히려 헤스터가 그런 식으로 강인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주지만, 어쨌든 그녀의 연기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고 본다. 가끔씩 하나도 안 이쁘게 웃긴 했지만, 펄의 세례 장면에서의 데미 무어의 수척한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아, 또 히긴스 부인 얘기를 해야겠는데,
실제로 원작에서는 정기적인 여자들의 집회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고,
히긴스 부인 또한 그렇게 헤스터에게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
감독은 단지 히긴스 부인이 나중에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사실만으로 큰 상상력을 발휘한 것 같다.
예전에 누가 PC 통신에서 나중에 인디언들이 구출하러 오는 장면은 너무 심했다고 썼던 것 같은데,
그것은 진짜 맞는 말이며, 한 가지 덧붙이자면,
헤스터와 딤즈데일이 살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이 인디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또 평범한 사고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늘 영웅을 위해 희생되는 평민들을 보는 것은 씁쓸할 뿐이다.
자, 이제 게리 올드만 얘기를 해야겠지?
처음에 마차 들어올릴 때는 얼굴에(이마에) 주름도 지고, 좀 늙어 보여서 실망했었는데,
캬~ 설교 장면은 아주 끝내줬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모습을 겹쳐서 보여주는 방식도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개척지의 목사 차림이랑 긴 머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제일 멋졌던 부분은 맨 마지막에 교수대에 목을 매려고 고리에 얼굴을 집어넣고 있을 때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헤스터와 얘기할 때, 눈에 눈물이 반쯤 고였다가 끝내 흘리지 않고 돌아서는 장면이었다. 캡 잘 생기고, 분위기 좋음이다. 뾰옹~~~~!!! 아, 참 그리고 숲속에서 세 명의 가족이 껴안고 절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 생각하면 배경과 인물만 같게 설정했을 뿐, 영화와 원작은 거의 다른 얘기 같다.
부디 내가 원작과 영화를 헷갈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뭐, 꽤 흥미롭게 봤다.
데미 무어 목욕 씬이 너무 시시해서 좀 그렇긴 했지만.
게리 올드만 나오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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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0월 6일 (수) 저녁 8시 집에서, 혼자서
"주홍 글씨"는 개봉 당시에 상당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특히 원작을 너무 말도 안 되게 각색했다는 것 때문에 엄청 욕을 먹었던 게 생생하다.
그 시절 사람들이 보기엔 여러 모로 꽤나 파격적인 영화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지금 2021년에 다시 본 이 영화는 어떠냐?
너무 강해서 부러질 지언정 절대로 휘지 않는 헤스터 프린(데미 무어 분)의 좌충우돌도 참... 그렇고,
너무 약한 나머지 차라리 위선의 고통을 감내하는 쪽을 선택한 딤즈데일(게리 올드만 분)도 참... 그렇고,
그냥 참.... 그렇다.
뭐든 극단적인 것은... 참... 그렇다.
나참. 어쩜 이렇게 할 말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냥 최근에 내가 접한 것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것'으로 가득찬 영화였던 것 같다.
강한 사람은 너~~~~~~~~~~~~~~~~~~~~~무 강해서 탈,
약한 사람은 너~~~~~~~~~~~~~~~~~~~~~무 약해서 탈,
그 와중에 미친 사람(로저 프린, 로버트 듀발 분)은 또 너~~~~~~~~~~~~~~~~~~~~~무 미쳐서 탈.
이 사태를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냥 난리 부르스, 대환장 파티, 그 자체다.
더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예전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요새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가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딤즈데일 목사가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처형대의 나무에 대고 손을 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너무도 고통스러울 때,
특히 말할 수 없는 내면의 고통이 너무 너무 클 때,
저렇게 자해를 할 수도 있는 거겠구나,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1살 때 나는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썼을지 너무 궁금하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