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 글쓰기 좋은 질문 564번

by 마하쌤

당신은 저승사자다. 당신의 자서전을 시작할 첫 문단을 세 가지 스타일로 각각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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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에게나 그를 저승으로 인도할 한 명의 저승사자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바로 그 한 명이 되어주었다. 따라서 내가 맺은 모든 관계는 1:1,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그 한 명의 삶 안에서 삶의 모든 정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는지. 그가 나를 만나기까지 삶 속에서 겪어온 모든 순간들이 다 기적이었던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들 한 명 한 명을 만났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저승사자로서의 내 삶은 결국 그들과 함께 한 이야기였으므로.



2) 저승사자도 직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당신이 회사원이고, 당신이 학생이고, 당신이 주부인 것처럼, 나는 저승사자인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자가 선택한 역할이 있고, 또 각자의 역할에 따른 할 일들이 부여되게 마련이듯이, 나도 저승사자이기를 선택했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벌을 받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하는데, 난 그런 억측들이 내내 너무 억울했었다. 사람들은 모르면 제대로 알려고 하질 않고,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추측해도 되는 권리가 생긴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자서전은 저승사자가 되기로 한 나의 선택과 내가 선택한 삶의 전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3) 나는 한 번도 내가 왜 저승사자인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그저 눈 떠보니 나는 이미 저승사자였을 뿐.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던데, 내가 보기에 인생은 랜덤 아닌가 싶다. 모든 가능성들 중에서 뽑기 공을 뽑듯이, 그냥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것을 문제 삼고,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 반항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그저 저승사자일 때 내게 가능해지는 것과 불가능해지는 게 무엇인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 순 없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그게 뭐든 최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제일 효율적인 선택이지 않을까? 그래서 굳이 자서전을 써야 한다면, 나는 내가 저승사자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에 대해 써보고 싶다. 그것도 나름 꽤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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