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저마다의 재능이 있다. 당신의 특별한 능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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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The Gift)"였는데, 딱 이런 질문이 나왔네!
그 책에서는 재능(gift)을 '초자연에서 온 선물, 창조주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표현하던데,
재능은 우리가 일궈낸 성취가 아니라는 점에서, 선물인 게 정말 맞는 것 같다.
이 재능을 가지기 위해서 난 한 게 아무것도 없거든.
(이미 받아서 존재하는 재능을 추후에 계속적으로 갈고 닦은 건 내 노력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관점에서 내가 창조주에게 받은 선물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솔직함
- 나는 솔직한 게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 오히려 솔직하지 않는 게 넘넘넘넘 힘들다. 첫 책 나오고 나서 어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다 까발릴(?) 수 있냐는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다. 마치 내가 대단한 각오라도 하고 그렇게 쓴 것처럼 말이다. 전혀 아니다. 그 글들이 특별히 더 솔직한 것도 아니었고, 난 그냥 내가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 썼을 뿐이다.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다 보니, 마음은 있어도 좀처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하더라. 그래서 알게 됐다. 솔직함 자체도 나에게 주어진 감사한 선물일 수 있겠구나 하고.
2. 유머러스한 말솜씨
- 내가 그렇게 개그캐는 아니지만(오히려 다큐 버전에 더 가깝지만), 말을 재밌게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얼굴 표정이나 손 동작을 많이 쓰는 편이고, 실제 예화를 많이 들어주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내가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재밌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재밌게 들어주시면, 좀 더 재밌게 하기 위해 과장(MSG)을 섞고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정도로, 상당히 집중력 있게 들어주시곤 한다. 강의를 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참 감사한 선물이다. 확실히 나는 글솜씨보다는 말솜씨가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이상하게 글을 쓰다 보면, 재미가 많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자체 검열 때문이려나? 말은 워낙에 검열할 새도 없이 발화가 되다 보니, 좀 더 날것의 느낌이 많이 날 수밖에 없는데, 내 유머는 보통 그 날것에 스며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글이 말보다 재미가 덜 한 것 같다.
3. 성실근면함
- 사주에 축(丑)자가 들어있어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나는 소같이 우직하고, 근면성실한 편이다. 책임감도 강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끝까지 완수해내려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매일 반복하는 일을 별로 지겨워하지 않고, 오히려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에 커다란 쾌감을 느끼며, 할 일 있음을 매우 즐거워한다. 단, 성질이 급해서 모든 걸 빨리 다 해치우려는 속성이 수시로 번아웃을 유발한다. 그래서 요즘은 내 속성에서 '빠름'을 좀 덜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그러나 남생이 말고 바다거북처럼 크고 묵직한 한 걸음씩을 내딛고 싶은 마음이다.
4. 아름다운 작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선
- 나는 세상에 있는 작은 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재능이 있다. 작은 꽃이나 지렁이 같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는 아름다운 면들도 잘 발견하는 편이다.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치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를 그런 것들에 쉽게 눈길이 가고, 그런 경이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 죽는다. ㅋㅋㅋㅋ 살아가다 보면 그런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참 많은데, 인스타그램이 생긴 후부터는 그런 소소한 발견들을 친구들과 바로 바로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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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얘기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한양대 아침 수업 마치고 한대앞역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보도블럭 위를 애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구글 렌즈에 검색해보니 박각시나방 애벌레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렁이와 달리 속도가 꽤 빠르길래, 신기해서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보도블럭 끄트머리에 이르더니 얘가 밑으로 수직낙하를 해버렸다. 구해줘야 되나 싶어서 달려갔더니, 별 충격도 안 받은 모습으로 금새 몸을 뒤집더니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지렁이가 비 오는 날 밖에 나왔다가, 날씨가 금방 개는 바람에 도로에서 말라죽을 위험에 처한 걸 보면,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구해와서 다시 근처 화단이나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겨주곤 했다. 그런데 이 애벌레는 크기가 지렁이에 비하면 너무 커서, 나뭇가지론 택도 없고, 최소한 젓가락 정도는 있어야 옮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마 손을 못 대고 있었다.
문제는 얘가 2차선 도로를 건너가기 시작했다는 건데, 지나다니는 차가 그리 많지 않은 도로이긴 했어도,
도로는 도로인지라 가다가 차에 깔려 죽진 않을까 너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미 건너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옆에서 빨리 가라, 빨리, 빨리, 이러면서 응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몇 번 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직 차선 밖을 지나고 있거나, 혹은 차 밑에 있을 수 있어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의 저쪽 편에 다 갔을 무렵, 검은 차 한 대가 지나갔고, 애벌레는 그 자리에 멈춰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놀라서 달려가봤더니 이미 머리 부분이 차 바퀴에 눌려 터져있었다. ㅠ.ㅠ
나는 그 참혹한 모습을 뒤로 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가며, 그 애벌레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 허무한 죽음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애벌레가 길을 건너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내가 직접 봤기에, 끝까지 응원했기에, 허무하다고만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애벌레나 인간이나, 죽음 앞에선 둘 다 너무나 무력한 건 똑같지 않나? 우리도 교통사고 나면 애벌레처럼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만 그 애벌레가 자신의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길을 건너던 그 시간, 난 그와 함께 있었고, 죽기까지 곁에서 응원했기에, 너무 외롭게 느끼진 않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던 모습이 내 핸드폰에 기록도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로 다시 한 번 남겨둔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한 애벌레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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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마르셀 모스는 선물 경제의 세 가지 의무가, 주는 의무, 받는 의무, 보답의 의무라고 했다.
값 없이 선물을 받은 자는, 그렇게 받은 재능을 가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받은 가장 큰 선물(Gift)은,
살아있는 "우리의 존재"라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