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사립탐정이다. 바람을 피우는 어떤 남편의 뒷조사를 한 달 동안 하고 있다. 의뢰인인 그 남편의 부인에게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알려주는 보고서를 작성해보라. 참고로 그녀는 지금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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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정서적으로 불안하겠지.
사립탐정에게 남편의 뒷조사를 의뢰했다는 건, 그만큼 이미 심증이 확실하다는 뜻이고,
이제 물증까지도 확보해서 그에 맞는 행동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니,
앞으로 그녀의 삶이 격렬하게 요동칠 것은 뻔하고, 그러니 불안할 밖에.
내가 사립탐정이라면,
그녀의 불안에 대해 뭔가를 해줄 순 없을 것 같다.
의뢰인이 불안해한다고 해서, 실제 사실을 축소하거나, 덜 충격적으로 만들어서 보고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녀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그녀가 자기 자신을 위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할 것이다.
나의 사적인 감정이 아예 배제된,
남편과 불륜녀가 만난 시간과 장소 및 그들의 행동만이 건조하게 나열되어 있는,
지극히 형식적인 조사 보고서를 줄 것이다.
판단과 선택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니까.
그러나 현장 도촬 사진에 대해서는 좀 고민이 될 것 같다.
남편과 불륜녀가 함께 걷거나, 식당에 마주 앉아 있는 사진도 있겠지만,
키스를 한다거나, 스킨쉽을 한다거나, 혹은 다정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진도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경우, 이 모든 사진을 다 전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잠시 망설일 것 같다.
글보다는 확실히 사진이나 동영상이 훨씬 더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흠... 그래도 역시 다 넣어야겠지...
사립탐정으로서 나의 역할은 한 달 내내 의뢰인의 남편의 행적을 추적, 관찰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남편의 행태에 내가 실시간으로 분노한다거나,
불륜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거나,
의뢰인의 가슴 아픈 상황에 지나치게 이입을 한다면,
이 일을 오래 하긴 아마 불가능할 듯 싶다.
차라리 동물학자가 됐다 생각하고,
발정난 두 마리 동물의 행태를 관찰한다고 마음 먹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아, 지난 번 통역사 이야기 쓸 때도 똑같이 썼던 말인데,
정말이지, 어떤 직업이든 결코 쉬운 일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