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사가 숲 속에 앉아서,
'크다는 것'과 '작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생쥐 한 마리가 까마귀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광경을 보고는,
급히 달려가 생쥐를 구해준다.
하지만 이후로도 고양이, 개, 호랑이 등이 계속 생쥐를 노리고 덤비자,
도사는 생쥐를 더 큰 고양이, 더 큰 개, 더 큰 호랑이로 계속 변신시켜준다.
이제 가장 큰 호랑이가 된 생쥐는... 자기가 작은 생쥐였던 걸 알고 있는 도사를 죽이고 싶어한다.
참... 무서운 얘기다.
아니, 나에겐 참 익숙한 얘기다.
난 생쥐의 마음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생쥐는 도사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도사가 자신을 호랑이로 만들어주었고, 그 덕에 목숨을 부지했기 때문이다.
나도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멋진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선한 사람들은 다 은혜를 절대 잊지 않는, 감사를 절대 잊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만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다.
은혜를 모르는 건 인간도 아니다.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도사가 밉다.
특히 호랑이가 된 후에 으스대며 숲 속을 누비는 생쥐에게,
"내가 없었다면, 넌 죽지 않고 살아 있더라도 가엾은 작은 생쥐일 뿐이야. 그러니 그렇게 잘난 척할 거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너무 속상했다. 그 말이 100% 진실이고, 사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난 그 말이 답답했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 말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넌 그것밖에 안 돼."
"네가 얼마나 잘난 척 하든, 난 너의 실체를 알아."
"넌 영원히 작은 생쥐에 불과할 뿐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숨이 막힌다.
나의 생각과 행동 방식과 감정들이 이미 많이 달라졌는데,
변화된 내 모습은 봐주지 않으면서, 계속 옛날의 나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 옛날에 그랬었잖아."
"넌 원래 그런 애였잖아."
"넌 늘 그런 식이었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아무리 변했다고 말해도, 아무리 달라졌다고 말해도,
그들은 나를 속속들이 꿰뚫어볼 수 있다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난 너를 알아."
그때 나는 정말로 살의를 느낀다.
호랑이가 된 생쥐가 왜 도사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안다.
과거를 어떤 식으로든 끊어내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약하고, 미숙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의 성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들 눈에 난 영원히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숨이 막힌다.
문득 두 가지가 퍼뜩 알아진다.
하나는 내가 그들의 인정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그들이 나를 인정해주어야만 공식적으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도대체 그들이 뭐길래?
여기엔 모두에게 완벽하게 인정받아야만 진짜라고 생각하는 내 결벽증이 숨어있다.
한 사람이라도, 나에 대해 의심을 품어선 안 된다는, 불가능한 기대.
특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인정해야 진짜라는 생각 말이다.
또 하나는 내가 그들에게 난 변했다고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변했다면,
그래서 내 변모된 모습을 그들도 느낄 수 있었다면,
굳이 말로 증명하려 들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런 면에선 아직 내가 충분히 변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아프고 씁쓸하지만, 그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크고 싶어한다.
나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아직 내 속엔 좀처럼 자라지 않는 작은 내가 있다.
멋지고 큰 외피를 입을수록, 스스로를 공갈빵처럼 느끼는 작은 내가 있다.
누군가는 내가 공갈빵인 것을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작은 내가 있다.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그들.
'네가 아무리 잘난 척 해봐야, 난 네 진짜 모습을 알아.' 라고 속삭이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를 만든 신인가?
나를 만든 부모인가?
나를 가르친 선생인가?
나의 흠을 잡으려는 타인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내 자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