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쩔 수 없이 일주일간 당신의 침실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바라본 침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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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침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두 쪽짜리 창문이다.
양쪽 아파트 건물 사이로 유일하게 산을 마주하고 있는 공간이다.
창을 반 정도 열면 시원하고 향기로운 산 공기가 들어와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8층이기 때문에 창의 아래 반으로는 산이 보이고, 위의 반 정도는 하늘이 보이는 좋은 비율이다.
물론 여름엔 산벌레들의 습격이 있을 것이고, 겨울엔 창틈으로 꽤 추운 바람이 들어올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실 창으로 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 방은 단순하다.
침대, 책장,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가 전부이다.
이 방의 주인은 여기서 공부만 하다가 쓰러지듯 잠드는 게 틀림없다.
책장의 책들은 주로 인문학, 심리학, 철학 분야가 많고,
약간의 어학 공부(일본어, 중국어) 책들과 그림책들이 있다.
책상 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들은 수많은 메모지들인데,
주로 할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미 한 것들은 줄이 그어져 있고, 나머지 리스트에도 우선 순위별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메모를 많이 해서 그런지, 책상 위엔 다양한 종류의 포스트잇과 메모지들이 대기 중이었다.
이 방의 주인이 여자라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대나 옷장 같은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이상했는데,
자세히 보니 침대 밑에 상의, 하의, 속옷, 이렇게 세 개의 바구니에 나뉘어져서 옷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주인의 키높이에 맞는 책장 한 칸을 비워서,
거기에 작은 거울을 하나 두고, 로션이나 썬크림 같은 것들이 몇 개 올려놓아져 있었다.
아마도 여기가 주인 여자의 간이 화장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화장대라 부르기도 살짝 민망한 것이,
그 외엔 화장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거의 없고, 손톱깎이나 콧털 가위, 귀이개 정도만 있기 때문이다.
이 방 전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프린터기 밑에 2단짜리 작은 상자형 서랍장 같은 것이 놓여있는데,
그 안에 온갖 종류와 크기의 종이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노트나 수첩의 남은 부분을 뜯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양이 상당했다.
저걸 어디에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은 종이들을 그냥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써서 버리는 타입이구나 하고 추정되었다.
이 방의 유일한 장식물은,
'슬램덩크'의 강백호 피규어와 뜨개질하는 가오나시, 그리고 손가락 토토로 인형,
그리고 작은 양 인형 하나와 비버로 추정되는 더 작은 인형이 전부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모양이었다.
전체적으로 방이 작고, 수납 공간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갖출 것만 딱 갖추고 사는 그런 느낌의 방이었다.
목표가 명확한 공간이랄까?
이 방에 있으면 달리 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괜히 뭐라도 읽거나 써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