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69 : 글쓰기 좋은 질문 259번

by 마하쌤

* 당신이 절대 쓰지 않을 소설을 위한 다섯 가지 아이디어








---------------------------------------------------------------------------------------------------------------------------

일단 내가 소설을 쓸 일은... 정말로 없지 않을까... 싶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이야기를 쭉쭉 펼쳐나가는 데는 영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웹소설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 하길래,

나도 글재주 좀 있겠다, 함 도전해봐? 이러면서 문피아에 뛰어들었었는데,

딱 21일 동안 하루에 A4 5장씩 매일 연재하다가,

두손 두발 다 들고 포기했다.

그때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는 구독자님이 딱 한 분 계셨는데,

그분께 죄송하다고 사과드리는 공지를 올리고 글을 내렸던 게 기억난다.


나는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고,

해봐야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는 성격이라,

웹소설도 실전을 직접 뛰어보고 빠르게 포기했다. ㅋㅋㅋ


문창과 석사 다니던 시절에도 단편 소설을 여러 편 썼었지만,

합평 받을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들었었다.

"이건 그냥 네 일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한 마디로 '구라가 안 되는 여자'라고 하겠다.


그러니 내가 앞으로 소설을 쓰는 일은 정말 없겠지만,

누군가 나 대신 써줬으면 하는 소설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자면,


1) 듀오링고로 외국어 공부하는 전세계 사람들 중에서 최상위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 이야기.

=> 사실 이것도 내가 요즘 매일 겪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듀오링고 리그에서 우승해봐야 사실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는데, 이거에 목숨 걸고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나 포함. ㅋㅋㅋㅋ), 누가 이런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써주면 재밌을 것 같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지. 이윤도 없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 얘기?

게임이나 승부에 목숨거는 사람들 얘기도 좋고.


2) 쉬지 못하는 여자 이야기

=> 이것도 내 얘긴데(ㅋㅋㅋㅋㅋㅋㅋㅋ), 쉰다는 개념 자체가 없고, 도무지 쉴 줄도 모르고, 심지어 쉼에 대해 배우러까지 갔다 왔건만, 끝내 쉬지 못한 한 여자가 진정한 쉼을 깨달아가는 그런 얘기를 누가 써주면 좋겠다. 그럼 나도 그 소설을 읽고 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직접 소설은 쓰기 싫고, 소설의 주인공은 되고 싶은 모양이다. 거참. ㅎㅎ


3) 오래 살기 위해 음식 조절하며 사는 사람들 이야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이것도 내 이야긴데, 몸이 약해서 병치레가 잦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각자가 선택한 극단적인 식이 요법을 해나가는 이야기를 써주면 좋겠다. 나도 주인공 중에 하나로 나오는데, 나는 8체질식을 하는 사람으로 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지중해식 식단이나, 생식, 간헐적 단식, 이런 다양한 식이요법을 하면서 서로 자기 것이 더 효과가 좋다고 싸우는 얘기면 재밌을 것 같다. '트렌드 코리아 2026'에 보면 요즘 화두 중 하나가 '건강IQ'라고 하니, 시대에도 맞는 주제이지 않을까 싶어서 추천한다.


4)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 이야기

=> 이건 지금의 나는 아니고, 옛날 작가 초창기 시절의 내 얘긴데, 뮤지컬 대본을 쓰려면 왠지 강원도 깊은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사색하며 글을 써야 될 것 같은 클리셰에 매여서, 정말로 비수기에 강원도 홍천 펜션에 혼자 글쓰러 갔다가, 집중은 고사하고 온갖 사건에 휘말려서 글을 한 줄도 못 쓰고 돌아온 경험이 있다. 아, 이 얘기도 풀면 진짜 재밌는데(ㅋㅋㅋ), 암튼 이런 컨셉으로 온갖 예상치 못한 방해 속에 결국 글을 못 쓰는 작가 이야기를 코미디로 써도 재밌을 것 같다. 쓰다 보니까 내 인생 자체가 진짜 코미디구만... 아놔...


5) 대문자 F 엄마랑 대문자 T 딸이 둘이서 살아가는 이야기

=> 이젠 말하는 것도 입 아프지만, 이것도 당연히 내 이야기고(ㅎ), 엄마랑 나의 대환장 파티인 나날들을 누가 옆에서 몰래 엿보다가 소설로 써주면 좋겠다. 물론 상식적으로 이건 내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니까, 내가 제일 잘 쓸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뭐랄까 당사자는 도무지 객관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걸 쓰면 완전 내 입장에서만 써서 엄마를 이상한 사람처럼 묘사할 위험성이 좀 있을 것 같다. 객관적인 작가가 보면 나도 완전 이상할 수 있으니까, 그런 중립적인 시선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처음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땐,

쓰지도 않을 소설 아이디어를 써보라는 게 영 이상하게 느껴졌었는데,

막상 써보니까 내 삶 속의 소설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이는 데다가,

나라는 사람의 '주인공'에 대한 욕망도 여실히 보여서 꽤 재밌었다.

역시 글은... 직접 써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니깐!

keyword
작가의 이전글168 : 글쓰기 좋은 질문 57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