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0 : 글쓰기 좋은 질문 545번

by 마하쌤

* 커피값을 계산할 때나 텔레마케터와 통화할 때 등 짧은 대화 하나를 가능한 한 길게 늘려보라.







---------------------------------------------------------------------------------------------------------------------------

보자마자 "이 질문을 카페 알바생과 텔레마케터가 싫어합니다"라는 말이 딱 떠오르네.

아니, 그 사람들이 이렇게 불필요하게 말을 길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이런 걸 시킨담?!


그러고보면 나는 상대방이 힘들게 느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 같다.

일단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 원칙이기도 하거니와,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무게로 이미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로 인해 거기에 조금이라도 고통이나 무게가 더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매우 크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그들을 위한 배려를 많이 하는 편인데,

얼마 전 갔던 안과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눈 정밀 검사를 하게 되면, 검안사 선생님이 약 1시간 동안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각종 눈 검사 기계에 앉혀서 검사를 하시는데,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면 안 될 때도 있고, 눈을 깜빡여서는 안 될 때도 있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연로하신 분들은 대부분 그런 자잘한 지시사항들을 지키기 어려워하셔서,

검안사 선생님이 수십번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자세를 여러 번 고쳐드리고,

같은 검사를 여러 번 다시 진행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로 인해 검안사 선생님이 몇 배로 빠르게 지쳐가고, 나중엔 목소리에 기운도 친절도 다 빠져버리는 것을 알기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에 착착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검안사 선생님이 알든 모르든,

모든 지시 사항을 정확히 한 번에 이행하기 위해서 최선을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부디 검안사 선생님이 '이번 검사는 수월하네'라고 느끼실 수 있도록 말이다.

적어도 나 한 사람이라도 그 분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이 엄마한테는 배려가 아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지나치게 남을 신경쓰느라, 내 에너지를 축 내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거다.

나는 내가 아무리 바빠도, 몸이 안 좋아도, 돈이 없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 나머지,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만나고, 밥 사주고, 선물 주고, 그리고 집에 와서 뻗어버리길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엄마를 위해 설거지를 하거나, 무거운 장을 대신 봐오는 것도 너무 너무 싫어하신다.

그러면서 계속 소리를 지르신다.

"네 일 해! 네 몸이나 신경 쓰라고! 남 도울 생각 하지 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쩌면 나는 남한테는 좋은 사람이지만,

나한테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름대로는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직도 그대로네. 쩝.

keyword
작가의 이전글169 : 글쓰기 좋은 질문 25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