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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글쓰기 좋은 질문 23번

by 마하쌤

* 서로를 증오하는 두 사람이 열두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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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렇게까지 증오하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만의 사정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인식이 너무 커져 버려서,

도저히 이해는 안 되더라도, '그럴 수 있을지도'까지는 생각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 내가 보기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증오하곤 했는데,

그 사람들을 미워하느라 내 기운이 쪽쪽 빠질 정도였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굉장히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였는데,

자기가 맡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실제로 하는 건 하나도 없었고,

내가 혼자서 뼈빠지게 고생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에 숟가락 얹는 게 취미인 사람이었다.


내가 회의에서 혼나면, 민영씨 혼자 한 거라고 하고,

내가 회의에서 칭찬받으면, 우리가 함께 한 거라고 말하는,

진실을 알고 있는 내가 옆에서 뻔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뻔뻔한지, 아무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인간 덕분에 나는 살아서 지옥을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됐는데,

매일 밤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죽여버릴까 그 궁리만 했던 것 같다.

꿈 속에서 끝도 없이 찢어 죽이고, 때려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물에 빠뜨려 죽이고, 목 졸라 죽이고...

죽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시도해봤던 것 같다. ㅠ.ㅠ

그 정도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그 사람을 증오했다.


그런 내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게 뭔지 아는가?

바로 그 사람과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었다.

회의실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마다,

그 사람 몸 속에 들어갔다 도로 나온 공기를 내가 흡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너무너무 싫었다.

오죽하면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참고 또 참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덜 들이마시려고 바보 같은 애를 썼다.

그 정도로 싫어했었다.



그러니 오늘 질문에 나온 상황이 된다면,

나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것 자체보다,

그 사람과 한정된 공기를 함께 흡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미쳐버릴 게 분명하다.


아오... 간만에 그 사람 생각을 다시 했더니,

도로 트라우마 생길 것 같다. ㅠ.ㅠ

암튼, 그 남자가 지금까지의 내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증오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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