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성장 중이랍니다. ('피터의 의자')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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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이미 자라버렸음을, 너무 커버렸음, 성장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대한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성인들을 위해서도 분명한 시사점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이미 작아져버린 의자에 굳이 앉으려고 하다가, 자기가 너무 커버렸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피터는 여동생 수지 때문에 자기가 어렸을 때 쓰던 모든 것들, 요람, 아기 침대, 식탁 의자까지, 점점 분홍색으로 잠식되어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분홍칠이 되지 않은 자기 의자를 들고 집 밖으로 피신한다. 그 의자만큼은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자기에겐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동생을 위해 분홍칠을 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내가 원치도 않는데 남이 계속 내 물건을 바꿔나가는 거니까(설령 그게 부모라 할지라도), 피터가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만약 피터의 부모가 왜 이 물건들을 분홍칠 할 수밖에 없는지 피터에게 먼저 잘 설명을 해주었다면 괜찮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터의 부모는 그런 쪽으론 영 무심한 사람들이다. 피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피터가 너무 커버려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물건들을 동생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부모가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니까 애들은 자기 멋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정말 많이 부족하다.


암튼 내가 진짜 얘기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라, 과거에 내가 아꼈던 것, 과거의 나에게 매우 중요했던 것, 옛날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 옛날에 내가 쓰던 것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남아있는 법이다. ‘내 것’이라는 개념이 가장 크게 남아있는 것들이니까. 이걸 성인 버전으로 한 번 바꿔보자면, 나는 이제 팀장으로 진급했지만, 옛날 대리일 때 누렸던 모든 것들이 과거의 어떤 것일 수 있다. 이때 팀장은 대리를 질투할 수 있다. 언뜻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것 같겠지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팀장은 대리보다 월급도 많아지고, 지위도 높아지고, 권한도 많아졌지만, 그만큼 책임과 부담도 커진 자리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팀장으로서 가지는 이점보다 팀장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당연히 대리이던 시절에 자신이 누리던 자유와 의존성 같은, 대리의 장점을 부러워할 수 있다.


재밌는 건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 위치에서의 단점과 자신의 전 위치에서의 장점이 매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불만과 과거의 좋았던 점에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다. 이러면 이미 나에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것에 집착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전 남친, 전 직장, 전에 쓰던 책상, 젊었을 때 입었던 옷, 내가 지난번에 앉았었던 자리, 과거의 좋았던 모든 경험들 등등... 이것은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더 성장하기를 원치 않는, 퇴행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 내가 가진 것의 장점, 좋은 점을 보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지금 할 수 있게 된 것, 지금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피터의 예를 들어보면, 그는 누워만 있었던 아기였을 때와 비교해서 지금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다. 말도 할 수 있고, 혼자 걷고 뛸 수도 있고, 자기가 직접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친구랑 나가서 뛰어놀 수도 있다. 아기 때는 하나도 못 했던 엄청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깡그리 무시하고, 지금 나에게 더 이상 없는 것, 엄마가 요람에 눕혀서 흔들어주는 것, 의자에 앉혀서 밥을 먹여주는 것 같은 걸 바란다면, 당연히 속상하고, 옛 것에 더 애착이 가고, 도로 애기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애기였던 상태가 더 좋은 것인가?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걸 버리고서라도,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애기 때로 정녕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특히 자신의 대한 부모의 사랑이 애기였을 때와 전혀 변함이 없는데도? 똑같은 조건에서 내가 누리는 것만 훨씬 더 많아졌는데도 도로 아기가 되고 싶은가? 이건 분명한 피터의 계산 착오다. 자기가 가진 것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눈에 보이는 대로, 당장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즉각적이고 단순한 반응만 바랐기 때문에 이런 인지 오류가 생긴 것이다. 피터는 지금이 훠얼씬 나은 상황이다. 단지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이게 다 시야가 좁아져서 그렇다. 그리고 인간은 늘 자기에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관심을 더 갖기 때문이다. 한 때는 나에게 무척 소중하고 귀했던 것이라서 안전하게 모아두었던 것들도, 몇 년 후 들여다보면 내가 이걸 왜 갖고 있지? 싶었던 게 많다. 그만큼 내가 변한 것이다. 나의 여건, 나의 상태, 나의 가치관, 나의 생각이 다 바뀐 것이다. 새로운 기준에 맞춰서 보면, 옛 것은 그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들이 참 많다. 내가 매일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영원히 남아있고 싶은 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과거에 집착하고 매인다. 나는 변할 수밖에 없다. 몸도 계속 변하고, 마음도 계속 변하고, 환경도 계속 변한다. 심지어 세포도 매일 변한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좋든 싫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그것은 분명 진보와 성장의 방향이어야 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퇴행은 현실 도피일 뿐이다.


현재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현재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 변화하고 성장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퇴행을 꿈꾼다. 피터의 의자는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당신은 당신의 성장과 변화를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과거의 행복을 그리워하고 있는가? 당신만 못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진 않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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