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계신가요?
서양음악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다 보면 작곡가에게 별명이 있는 것이 무척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만큼 서양음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야.”
이 정도만 말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 그렇구나.’하고 지나간다. 아이들은 작곡가에 대해 관심이 없고, 바흐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해봤자 졸음만 불러올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서양음악 작곡가들에 대해 배울 때도 그랬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가곡의 왕 슈베르트, 피아노의 시인 쇼팽... 단어 몇 개를 선생님이 읊어주면 대충 다 이해가 갔다.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었나 보다.’ ‘슈베르트는 가곡을 많이 썼나 보지?’ ‘쇼팽은 피아노곡 작곡에 재능이 있었나 보군.’ 이렇게 간단하고 쉽게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한참 후에 내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고 작곡가들에게 붙여진 별명들이 한 일본 출판사에서 임의적으로 붙인 것들이라는 사실과 그런 별명들이 일부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헨델의 음악을 한 아이에게 가르칠 때였다. 나는 습관적이고도 통상적이게 헨델에 대해 설명을 했다.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작곡가야.”
아이는 헨델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를 보며 질문을 했다.
“이 사람 여자예요?”
교과서나 음악 교재에 제시된 헨델의 사진을 보며 아이들은 종종 헨델의 성별을 고민하긴 한다. 바로크 시대의 지나치게 화려한 복식과 그의 머리에 올려진 장발의 파마머리를 보면 성별이 헷갈릴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은 아저씨 같은데 치장은 여성 같은 모습에 아이들은 종종 성별을 묻곤 한다.
“헨델은 남자야. 그런데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건 그만큼 서양음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거야.”
이렇게 대답하면 보통의 경우처럼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줄 알고 곡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찰나였다.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만든 여자 작곡자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러면 여자 작곡가 중에 한 명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면 안 돼요?”
나는 이 부분에서 말문이 막혀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첫째로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이고 두 번째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성 작곡가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오랜만에 대학교 시절에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서양 음악사 책을 꺼내 여성 작곡가를 찾기 시작했다. 866쪽의 장서를 두 시간 넘게 훑어보았지만 여성 작곡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고대 말기부터 20세기 음악 전반을 다룬 책에서 여성 작곡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내가 여성 작곡가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는 걸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수백 년의 역사를 다룬 서양 음악사 책에 실릴만한 여성 음악가가 이렇게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두껍다 못해 무거운 전공 서적을 덮으며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도는 불편한 생각이 가슴 한편에 ‘쿡’하고 박였다. 짧은 몇 줄의 글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두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으며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여성이면서도 한 번도 그 두꺼운 책에 여성 작곡가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며 음악의 '어머니’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다음에 음악의 어머니를 찾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때는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