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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Mar 01. 2021

당연하지 않음에 대하여.

-Barbara Strozzi (1619-1677)

사상 초유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쓴 2020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를 했다. 내가 누리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내가 여성 작곡가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래와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하였다.  



‘내가 누리는 것들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구나.’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여성 예술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작가, 화가, 지휘자, 연주자, 조각가 등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들의 이름을 인터넷 창에 치기만 하면 그들의 창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다른 분야는 몰라도 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능력에 따른 차등만 있을 뿐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내가 여성이어서 차별을 받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다.


예술학교나 예술대학교에서의 성비를 보면 아직도 여자 학생의 비율이 남자 학생의 비율보다 최소 2배 이상 높다. 대학교에 와서 남자 학생들이 비슷한 시기에 군대에 가면 그야말로 학교는 공립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남자 학생을 보기 힘들어진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내 능력을 세상에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수년 후 여성 동기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거의 다 포기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생각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회에서 예술활동을 이어나가는 여성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성들이 창작활동이나 연주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는 사회 환경적 요인도 어쩌면 차별이 아닐까 한다.  현대의 여성들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차별에 노출되는 상황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암묵적이고도 은밀한 환경적 차별에 의해 사회활동을 재재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위해 과거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더욱더 각성을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게 되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름 없는 회원이어야했고, 자신이 창작한 작품에 강한 애착을 표현하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했던 여성 작곡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텅 빈 눈 안의 열정     


바르바라 스트로치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여성 작곡가로 당대에 남성 작곡가들 못지않게 많은 세속 성악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바라의 특이점은 또 하나의 직업이 상류층을 상대하는 매춘부였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상류층을 상대하는 매춘부들은 귀족의 사생 아거나 그 보다는 낮은 신분이지만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양반들이나 왕족을 상대하는 기생이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그녀는 161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이름 모를 아버지와 가정부 일을 하던 이사벨라 가르초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일설에 의하면 이사벨라 가르초니 역시 상류층을 상대하는 매춘부였다고 하지만 모든 여성 작곡가의 일생이 그렇듯이 정확히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다.     


이 시대의 상류층 창부들은 연예인 같아서 그들의 복식이나 그들이 나눈 대화들이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이름 없이 살아가거나 죄인처럼 살아가야 했다.     


바르바라는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당대 유명한 지식인이었던 줄리오 스트로치의 양녀로 들어가면서 일반적인 사생아들보다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줄리오 스트로치는 자신의 양녀에게 애정이 꽤 있었던 모양으로 그녀에게 상류층이나 받을 수 있던 양질의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바르바라는 자신의 장기인 류트뿐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예술과 문화 역사 등의 소양도 높은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줄리오 스트로치는 어렸을 때부터 비범한 재능을 가진 바르바라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했고 그들의 모임에 마스코트처럼 그녀를 키워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양아버지가 만든 지식인들의 비밀 모임 안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식 회원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이 비밀 학회(The Accademia degli Unisoni)에서 토론할 주제를 정하고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곡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양아버지의 친구 지오반니 지만니 사이에 아이를 4명이나 낳았지만 정식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그녀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지만이 소유의 저택에 기거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바르바라는 세속 성악 음악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100여 편의 작품과 8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이런 업적은 서양 음악사에서 다루고 있는 줄리오 카치오나 자콥 페리에 비견될만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업적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조차 전해지고 있지 않다.    


바르바라 스트로치



위의 그림은 바르바라 스트로치의 자료를 찾다 보면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초상화인데 [비올라 다감 바 연주자]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 그림은 그녀의 양아버지 줄리오 스토리치의 의뢰로 그려진 것으로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한 그녀의 오묘한 시선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사생아로 태어나 귀족 못지않은 고등교육을 받고 남성 사회에서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자신의 후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유희를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해야 했던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창작활동을 이어나갔을까.     


평생 모순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남긴 그녀의 인생을 엿보면서 자신의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가치를 위해 싸운 여성들이 있어 현재를 사는 여성들이 지금 누리는 것들(투표권, 남성과 같이 동등한 교육받을 권리 등)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통함 속의 아름다움     


그녀의 수많은 성악곡 중 내가 소개해주고 싶은 곡은 그녀의 8권의 출간 악보집 중 마지막 8권에 실려있는 ‘Che si può fare?’이다. 류트 반주에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올려지는 단순하면서도 어두운 멜로디의 이 곡은 1664년에 이탈리아의 문학가 아우렐리의 시에 바르바라가 곡을 붙인 것이다.      


하늘에서 조차 나의 고통을 달래줄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절규가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담담히 울린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바르바라가 비밀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눈부신 재능을 뽐내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카데미 안의 주류가 될 수 없었던 장면이 떠오르는 듯하다.         



(5) Barbara Strozzi. "Che si può fare". Mariana Flores. soprano. - YouTube




Che si può fare?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Le stelle ribelle non hanno pietà;             하늘은 나에게 아무런 신호를 주지 않고

se ‘l cielo non dà un influsso                       별들은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di pace al mio penare,                                   나의 고통을 편안히 받으세요.

che si può fare?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Che si può dire?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Dagl’astri disastri mi piovano ognor;            하늘은 나에게 재앙을 퍼붓고 있어요.

se perfido amor un respiro diniega             나의 모든 고통 속에서 사랑조차 나에게

al mio martire,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면

che si può dire?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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