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아를 먹던 유년시절 박완서와의 대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무쌍

그해 나는 붉은 옷을 입는 것이 꺼림칙했다.

온 나라가 태극기가 새겨진 붉은 옷을 입고 다니던 때였다. 강남 대로에 있던 직장이라 경기가 있는 날이면 태극기를 들고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몰려왔다. 직장 임직원 모두가 단체 응원을 가야 할 정도로 응원전은 대단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 틈에 서 있을 수 없어서 홀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동료의 눈을 피해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에 숨어서 붉게 달아올라 뜨거워진 눈을 식혀야 했다.

고향 귤 밭은 아빠의 땀방울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귤색은 아직 초록이었다. 아빠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귤을 수확할 늦가을까지 기약할 수 없었다. 축구 대회는 기대 이상의 성취감으로 모두를 들끓게 했지만, 나는 자식으로 낙오자였다. 가을이 깊어지기도 전에 아빠가 있던 세상은 끝나 버렸다.

떠나시기 몇 해 전 아빠가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셔서 노트와 볼펜을 드린 적이 있다. 살아온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살아온 걸 써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서 써보시라고 아빠를 부추기며 줄 노트 중에 가장 두꺼운 것을 골라 드렸다. 장례식이 끝나자 아빠의 노트가 떠올랐다. 그 노트를 찾느라 집안을 다 뒤졌지만 어디에도 노트와 볼펜은 보이지 않았다. 과수원 창고 작업대 서랍에도 귤 밭농사 일지만 남아 있었다. 가족들도 모른다고 했고, 이미 떠나버린 아빠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생전에 글을 잘 쓰고 계신지 여쭤보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아빠를 기억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모습을 떠오르는 대로 노트를 채워갔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이 든 건 아빠를 기억하려는 의지가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로 쓰고 싶은 건 어린 시절 아빠가 해주었던 말들과 가르쳐 주셨던 야생의 식물들 그리고 귤밭에서의 이야기였다.


박완서 작가는 올림픽대회가 열리는 해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고 한다.
올림픽을 치르던 국민들은 축제처럼 즐거웠고, 어디를 가도 모두가 환호했지만 작가는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어쩜 사람들은 저렇게 즐거울까.'라며 슬픔도 괴로움도 더했다고 했다. 그리고 몇 해 뒤 작가의 유년 시절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출간되었다.

책 서두에 작가는 화가가 그린 자화상처럼 자화상을 그리듯 쓴 글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자기 미화의 욕구를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아마도 자화상이란 비유가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듯 작가 자신도 보이는 그래도 재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보니 제목 속의 '싱아'보다는 '엄마'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등장했다. 유년 시절 작가는 엄마와 가족,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자신보다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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