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막 들어갔을 때였다. 학교를 가려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 등에 업혀 동네 한의원에 갔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병원은 문이 열려있었다.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손을 잡더니 다리가 아니라 다른 곳이 아픈 것 같다고 하셨다. 체기가 있다면서 엄지손에 엄마가 이불을 꿰맬 때 쓰는 바늘처럼 큰 바늘을 찔렀다. 금방 피가 나오더니, 이젠 배가 아파왔다. 다리가 아픈 것도 잊은 채 화장실을 찾았다. 다리가 뻐근했지만 다시 엄마가 업어주길 기다렸다. 침을 맞고 집으로 왔고, 엄마는 말없이 가방을 챙겨 나를 업고 학교에 데려갔다. 선생님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수업이 끝나고 멀쩡하게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 많은 육아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며칠 전 놀다가 발이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는 여동생이 부러웠나? 학교가 가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어린 마음속에 예민하고 소심한 구석이 꽃피고 있었다. 뭔가 신경질이 나면 배가 아파서 뒤틀린 배를 진정시켜야 했다. 게다가 엄마만 없으면 우는 막내 동생도 있었다.두 동생은 '양보'라는 것을 충분히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받아 드리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게다가 미숙한 어린아이였다. 예민함과 괴팍함을 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엄마가 되었는데, 이젠 너무 참아서 문제가 발생했다. 갑상선이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참아야 하는 것들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주변에서 보내는 신호들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수양버들처럼 유연히 받아들여야 했었다. 예민증은 여전히 불쑥하고 나타난다. 모든 문제는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싸움이 난 상황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 나서서 뭔가를 정리했다. 마치 그 문제가 나로부터 시작된 듯 말이다.사실 나설 일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중재가가 되려고 해서 선택한 상황이었다.이젠 중재자는 그만두자 싶었는데 다시 역할이 생겼다.
두 아이 사이를 중재할 일은 계속 일어난다. 아이들의 다툼에 나서야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약 아이가 다치거나 물건이 망가지면, 정말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관계들을 중재했고, 협상을 해봤지만 그런 경력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완전히 해결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힘들어지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었음을, 아픈 동생이 받는 부모님의 관심을 돌리고 싶었던 것 들을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전혀 모르던 세상을 사는 듯싶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 보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큰아이의 사나운 행동은 말없이 꼭 안아주는 것으로 평화로워졌다. 억울해서 우는 둘째의 눈물은 하소연을 말없이 들어주는 것으로 그쳤다. 그랬더니 보드게임을 시작한 아이들이 서로 양보해가면서 논다. 때론 말로 하는 것보다 말없이 할 때 더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그렇게 노는 아이들 옆에서 말없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