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광릉에서 발견되어 이름 지어진 '광릉요강꽃'은 사연이 많은 야생화다. 모양이 비슷한 복주머니란은 사진으로 자주 봤지만, 이 꽃은 사진 조차 드물다. 화려한 색의 복주머니란에 비하면 광릉요강꽃은 은은한 매력이 있다. 사진으로 봐도 꽃은 신비로운 힘이 느껴진다.
주름치마처럼 접힌 잎과 단지(요강)처럼 보이는 주머니 모양은야생화 애호가들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2005년 멸종위기에 놓인 식물 1급으로 지정되며 숨겨진 자생지를 찾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책 정리를 하다 <멸종위기 우리 봄꽃: 우리 꽃이 없는 들에도 봄은 오는가 > 현진오 동북아 식물 연구소장의 글과 사진이 실린 잡지를 보게 되었다.글은 멸종위기 1,2급으로 지정된 꽃들을 소개하며 안타까움을 담은 듯했다. 그중에도 광릉요강꽃은 가장 개체수가 적은 꽃으로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 50포기뿐이며 다른 곳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쓰여 있었다. 꽃은 씨앗에서 싹이 뜨지 않고 인공증식법도 개발되지 않아 번식시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잡지에 실린 광릉요강꽃 사진 <2005.05>
어느 야생화 작가의 책에서도 광릉요강꽃 사연을 본 적 있었다. 광릉요강꽃 도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겨우 15포기도 안 되는 꽃을 주변엔 철조망을 쳐놓았지만, 해마다 사라지고 있던 자리엔 사진 펫말만 남았다고 한다. 어렵게 발견된 곳에서 또 멸종의 순간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곧 다른 지역의 자생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역시 철조망이나 감시 카메라는 무용지물이었다. 누군가가 훔쳐갔기 때문이다. 꽃도 지쳤는지 해마다 적은 수의 꽃을 피웠고, 훔쳐가는 사람들까지 거들며 꽃은 사라져 갔다.
마치 발견된 지역이 알려지면, 도둑들은 준비하고 쳐들어 가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훔치는 걸 들키지 않는 것을 보니 전문가들의 솜씨로 훔쳐가는 것은 맞는 듯하다.
좋은 일은 소리 없이 하는 걸까? 광릉요강꽃 군락지를 만든 사람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분의 사연은 이렇다. 우리나라가 금방이라도 물에 잠길 듯 한 공포가 지배했던 때가 있었다. 어려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댐 건설을 앞두고 있었다. 성금 모금 행사를 온종일 TV에서 했고, 그 사기극에 국민들의 성금만 동원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1988년 강원도 화천군에 평화의 댐을 건설로 많은 땅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공사 현장에서 군락지를 발견한 그분은 20포기를 손수 옮겨와 키웠다고 한다. 당시 한눈에 보아도 희귀하고 아름다운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다고 했다. 야생화라 이름도 모른 채 옮겨온 꽃을 손수 키우며 조금씩 개체수를 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만든 꽃밭엔 광릉요강꽃이 1500여 개로 늘어나 있었다고 한다.
하늘도 그 마음을 안 것일까? 전문가들의 오랜 노력에도 개체수를 늘리지 못했던 꽃이 그의 손에서 군락지로만들진 것이다.그의 노력은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모을 만큼 성공했다. 하지만 축제기간 동안 사진을 찍는 사람 손에 훼손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봐야 하는 일도 감수해야 했다. 꽃을 향한 사람들의 욕심은 어쩔수 없는 일인 듯하다.
오랜 기간의 노력으로 2019년 광릉요강꽃이 복원술이 성공하며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인공증식이 가능해져서 멸종위기는 막을 방법을 찾았을지 모르지만 난 안심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광릉요강꽃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자생지에서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산림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지니 꽃이 발견도 되기 전에 없어질지도 모른다. 토양 속 곰팡이와 공생하는 광릉요강꽃은 토양이 바뀌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자생지를 보존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광릉요강꽃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결정하라고 한다. 함께 살아갈지, 식물도감의 사진으로만 보고 싶은지 말이다. 다른 멸종위기의 식물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소리를 듣는 건 사람들의 몫인 듯하다.
그래도 꽃을 지키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희망을 가져본다. 광릉요강꽃이 피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