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빛나는 존재가 있다. 수많은 아이들 속에도 심지어 똑같은 옷을 입었어도 내 아이는 한눈에 알아본다. 하교하는 아이의 어깨를 보면 학교에서 좋았는지 그냥 그랬는지도 알 수 있다. 엄마가 되고 나선 별별 알 수 없는 능력이 생겼다.
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주고, 어떤 질문에도 정성껏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주고, 작은 실수는 모른 척 눈감아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항상 곁에서 북돋아 주고 싶었다.
엄마의 마음은 글로 쓰면 그럴듯한데, 실전은 달랐다. 모든 것이 희망사항이었다. 엄마로 나는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계속 재촉하는 잔소리꾼이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아이들은 용감해지고 나는 불안해진다. 내심 무심한 척했지만 아이를 믿지 못하며 걱정했다. 결국 멋진 엄마는 애당초 포기했다. 대신에 바라는 것들이 생겼다.
공부는 잘 못해도 밥을 잘 먹었으면 좋겠고, 키는 작아도 대범한 마음을 가졌으면 했다. 잘 울긴 해도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아이가 하나였을 때 생각이었다. 둘째를 낳고 보니 세상은 아이가 하나인 것과 완전히 달라졌다. 두 아이를 한꺼번에 재울 수 없었고, 두 아이의 입맛을 합친 음식은 거의 없었다. 라면이나 과자조차 다른 걸 좋아하니 말이다.
수레국화 두송이 @songyiflower인스타그램
다르지만 같은, 같지만 다른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건늘 좋은 쪽으로 명분을 만들어 가는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터울이 많은 애들이지만, 큰 아이 작은 아이가 아닌 그냥 똑같은 아이가 둘이었다. 아이가 둘이 되니 첫 아이의 경험은 참고는 되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두 아이는 늘 다른 쪽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 품에 큰다는 걸 자꾸 잊어버렸다.멋진 엄마는 포기했지만, 행복한 엄마가 되려고 여전히 노력중이다. 불쾌해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즐거운 일에 집중하며 평정심을 찾으려 했다. 아이들은 고무줄처럼 정확했다. 당기면 당길수록 멀어지고 놓는 순간 돌아왔다. 욕심이 낼 수록 잔소리가 늘어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 그 욕심을 다 비워내면 언제나 내 옆으로 왔다.
다행히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아이들이 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만들어주는 것이 어렵지도 않은데 핑계만 찾고 있었다. 원격수업을 하던 아이들이 같이 등교하는 날 급식정보가 날 기쁘게 했다. 잔치국수와 양념치킨이었다. 내가 준비한 것도 아니면서 큰 소식인 양 애들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