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우리 가족은 다행입니다

유효기간

by 무쌍

창밖으로 이는 느티나무는 내 키만 했다. 나무가 딱 우리 집 높이만큼 자랐기 때문이다. 집안에선 나무 꼭대기가 훤히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팔로 감싸 안지 못할 만큼 줄기가 굵고 단단한 아름드리나무다. 나무를 처음 만난 겨울엔 잎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른 봄부터 자란 가지는 창문 밖으로 팔을 뻗으면 악수를 할 듯 가까워졌다. 느새 나무는 항상 함께 있는 가족 처럼 느껴졌다.

침 해가 비추는 대로 나무 전체가 환해졌다. 빛이 녹색잎에 닿마자 주황색 전등처럼 밝게 빛났다.

늦잠을 거의 자지 않는 나는 동트는 풍경에 늘 압도당하듯 멍해지곤 했다. 태양은 눈이 부셔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느티나무가 내는 빛은 깊은 밤 달빛처럼 부드럽게 느껴졌다.


집앞 느티나무 2021.09.16

지난달부터 아파트 단지는 주차장 공사 중이다. 주차장 화단부터 없애기 시작했다. 화단 주인공은 모두 나무다. 줄기가 묵직한 백합나무, 은행나무, 벚꽃나무, 느티나무, 동백나무가 있었다. 나무 아래엔 영산홍이나 회양목, 명자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계속해서 포클레인은 화단을 부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무 근차근 꺾어내고, 마침내 뿌리 파내며 기계가 내는 '웅웅' 소리를 한동안 들어야 했다.

이제 화단에 남은 것은 흙더미뿐이다. 20년이 넘은 수령의 나무가 족히 마흔 그루가 넘게 사라졌다. 주자창이 부족하다고 아파트를 재건축도 하는데, 화단을 없애는 공사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


나무들이 빠진 곳은 오히려 밝아지고 환해졌다. 마치 커튼을 걷어낸 듯 주변 풍경을 바꿔놓았다. 대신 구멍 난 듯 빈자리 사이로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나무 그늘이 살짝 드리워졌던 길가는 태양이 내리쬐는 대로 아스팔트 도로가 눈이 부셨다. 나무와 나무 그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집 앞에 나무가 걱정되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포클레인 소리가 났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벌써 바로 앞에 화단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 지시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느티나무 바로 앞 화단까지 라며 손을 흔들어 알렸다.

우리 집 앞 느티나무는 뽑지 않을 모양이다. 느티나무는 별 탈 없이 지금도 우리 집 창밖을 지키고 있다. 우리 가족인 느티나무는 다행히 무사했다. 느티나무가 남아서 좋았지만 이미 많은 나무들은 사라졌고, 떠난 나무는 그리운 존재가 되었다.


1년 남짓 구피 열대어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아이들은 이별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했다. 함께 지낸 가족을 보내는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슬픔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지자 애도의 시간도 고요해졌다.


다음날 동이 트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름이 많이 낀 하늘이라 느티나무가 반짝이건 보지 못했다. 크고 작은 일들은 큰 파도와 작은 파도가 돼서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유효기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잘 쓰던 전자제품도 고치지 못하면 새것으로 사야 한다. 식료품들도 기한이 넘은 것은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아마도 그늘을 주던 나무도 아이들에게 키우는 보람을 주던 구피 열대어도 유효기간이 거기까지 였는지 모르겠다. 죽은 구피의 이름은 '무지개'라고 둘째가 붙여주었는데, 우리 곁에 잠시 있다가 무지개처럼 사라져버렸다.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무지개가 친구로 다시 찾아올 거야."

떠난 존재들이 언제든 다른 친구로 찾아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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