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면 마법을 부리듯 깜짝 놀라게 하는 꽃이 있다. 꽃의 영문 이름도 매직 릴리(Magic Lily)다. 꽃을 피우는 모습이 깜짝쇼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봄에 분명 초록색 난처럼 생긴 잎이 솟아나지만, 소리 없이 잎은 시들어버리고 죽은 듯 조용해진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예고도 없이 땅 위로 갑자기 꽃대가 쑥 올라온다. 여름의 마지막 손님처럼 불쑥 찾아와 화사한 꽃다발을 내민다.
상사화 @songyiflower인스타그램
잎도 없이 꽃만 피는 상사화는 연한 분홍색 꽃잎은 시들면서 연보라색이 된다. 꽃이 점점 보랏빛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려고, 꽃이 다 질 때까지 그 앞을 서성이곤 했다.
꽃은 백합을 닮기도 했지만 백합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연약해 보인다. 은은한 분홍잎은 분홍낮달맞이처럼 순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바깥으로 말린 꽃 모양과 꽃술은 은근히 폼을 내는 듯 매력이 많은 꽃이다.
줄기가 60cm 정도 일정하게 자리는 상사화는 여러 개의 줄기가 뭉쳐 핀 모습을 보통 볼 수 있다. 모두 꽃대만 내밀고 피어선지 누가 꺾은 꽃을 땅에 다시 꽂아놓은 듯 신기했다. 내 눈엔 그대로 화병에 꽂아 두는 편이 더 잘어울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슬아슬 줄기가 꺽기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화단 안쪽에 피어 멀리서 보기만 했다.
꽃은 수선화처럼 구근을 가진 여러해살이로 핀 자리에 다시 돋아나니, 매년 8월 꽃이 핀 장소를 기억하면 꽃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꽃이 오래 피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종종 꽃을 못 보는 해도 있었다.
이사를 온 동네에 상사화 찾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어디서 피는지 전혀 알 수 없으니, 상사화 찾기는 보물 찾기가 된 듯 했다. 드디어 올 여름 첫번째 상사화를 만났다. 화단 안쪽에 있어 가깝게 못보니 아쉬웠다. 그래도 모르고 밟을 일이 드문 안전한 자리에 피었으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은 금방 잊을 수 있었다. 늘 꽃은 내편인가 보다. 평소 꽃을 볼 수 없던 화단이었는데 갑자기 꽃이 "마법"을 부렸다. 잡초만 무성한 화단에 나타난 상사화는 원래 꽃 주인도 잊어버린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뜻밖이었다.
8월이면 상사화가 나를 즐겁게 해 주려는 듯 마법을 부린다. 건망증으로 깜빡하는 나를 위해 매번 같은 장소에 고맙게 피기도 하지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까르르 웃는 명랑한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