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

바랭이 숲

by 무쌍

낯선 동네라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이 여행처럼 느껴졌다. 큰 나무가 우거진 마을로 들어섰다. 혼자 여행을 나선 게 얼마만인지 느끼기도 전에 초록 화단이 나를 반겼다.


낯설지만 어딘지 편안한 기분이 들었던 마을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의 아파트였다. 보이는 곳마다 재건축 축하 현수막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반기는 듯했다. 은 대추나무는 가지치기를 많이 하긴 했지만 대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특별히 손을 보지 않고 방치한 듯 화단마다 계절 소식은 궁금하지 않은 듯했다. 빛바랜 아파트의 외벽과 창문에 비하면, 풀 덮인 화단은 사람 손이 가꾼 꽃내음은 찾기 힘들지만, 건강하고 싱그러운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앞은 온통 바랭이 숲이다. 일부러 심어 놓은 듯이 초록 화단이다. 잎이 얼기설기 만든 무늬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았다. 돗자리처럼 잠시 깔고 앉으면 시원한 풀향기가 코를 찌르며 폭신할 듯했지만, 더 탐이 났던 건 초록 풀숲의 붉은 장미 한 송이였다. 키가 작아 겨우 바닥 위로 한 뼘 정도 올라온 가지에 붉게 피어 있었다.

예전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화단마다 장미꽃이 멀쩡히 폼을 잡던 시절도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런데 바랭이 틈에 갇힌 듯 장미꽃이 신경 쓰였다. 늘 집과 그 주변을 오가는 내 사정을 보는 듯, 끈질기게 자라는 잡초들 속에 꽃은 어떻게 온전히 피었지 궁금해졌다. 풀이 의기양하게 사로잡은, 그 틈바구니에 장미가 곱게 피으니 안쓰러워졌다가 한편으로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나와 다른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화단의 풍경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나를 감싸는 것들은 안전하게 나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때론 못 견디게 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에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다시 마음을 다독여 본다. 원래 스스로 세워야 할 '나다움'은 애당초 내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내면의 힘을 세우는 것은 팬데믹 시대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연을 동경하면서도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바랭이 숲에 핀 장미꽃이 나와 비슷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랭이를 나라고 여기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눈앞엔 자연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바랭이는 자기 모습대로 땅 위를 기어가며 뒤덮었고, 붉은 장미는 온 힘을 다해 한송이를 피웠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그걸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 메리 올리버

자연을 사랑한 시인 메리 올리버가 한 말이다.

그녀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오래전부터 나도 그녀 같은 삶을 동경했는지 모르겠다. 메리 올리버는 날마다 뒷주머니에 작은 공책을 꽂고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시를 썼다고 한다. 그녀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품을 남겨두고, 야생으로 영원히 돌아가고 없다. 하지만 난 그녀를 만난 듯 아름다운 바랭이 숲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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