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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22. 2021

텃밭은 이미 김장준비 중이다

가을 텃밭

  착한 텃밭은 일단 싹이 올라오면 먹을 만하게 자라줬다. 처음 하는 서툰 주인이지만 작은 씨앗으로도 크게 커서 먹거리로 돌려주니 착한 텃밭은 분명했다.


 추가 지나 씨앗을 뿌렸더니  쑥갓은 금방 먹기 좋게 자랐다. 서늘해진 밭엔 가장 매운맛 고추를 맛보게 해 줬다. 깻잎은 여전히 덥수룩하게 잎이 난다. 가을 상추 모종을 심었는데 봄의 푸릇하고 연한 상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가을 상추가 훨씬 느리고 진한 맛으로 커가는 듯싶었다. 

착한 텃밭은 늘 먹거리를 주었다.

 지난 주말 문자가 농장에서 왔다. 미리 텃밭 정리를 해두라며, 관리가 안 되는 밭은 임의로 정리한다는 안내였다. 을 채소 모종과 퇴비 배부 날짜가 일주일 후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눈이 동그레 졌다.  

직접 키운 가을채소로 김장을 준비해보세요!

"김장을 한다고? 직접 키운 채소로?" 맙소사 텃밭을 시작한 이유는 상추를 키우거나 토마토를 따 먹으려는 순진한 마음이었다. 일이 커진 것 같은 기분은 아직 수확도 안 한 김장배추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 심지도 않았는데 김장걱정이다. 이럴 땐 걱정을 달고 사는 내 성미가 그대로 나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김장 소리에 호들갑을 떠는 나를 남편한마디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런데 무도 심어야 하는데 무 모종도 준데? 파도 심어야 하나?"

 아니 배추걱정인데 무와 말하는 남편 보니 김장 걱정은 나중에 하고 밭을 정리하러 가야 했다.


 여름이 언제 가나 싶었는데, 벌써 텃밭은 가을이 왔다.

밭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김장하려면 갓을 함께 심어야 한다는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 벌써 김장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을엔 뭘 심어야 하는지 감도 못 잡았을 내가 김장 채소를 키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김장 채소 수확을 할 때가 되면 텃밭은 끝이 나니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에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큰다는데, 주인이 찾아오지 않는 밭이 눈에 띄었다. 한 번도 수확하지 밭에 채소가 초록 침대가 되었다. 내 밭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뤄두었던 대청소를 한 듯 밭은 깨끗해졌다. 처음 밭을 보러 간 날처럼, 빈 밭을 보며 가을 채소 키울 자리를 그려봤다. 그런데 날씨 때문에 모종 심을 날이 걱정이었다. 여름 장마보다 가을장마가 더 길다고 하니 말이다. 며칠 비가 폭우처럼 심하게 내렸다. 그래도 텃밭에 새로 자랄 채소 생각에 마음은 들뜨고 설레었다.

 치커리는 씨를 하려고 꽃이 피는 대로 두었더니 밭을 덮을 지경이었다. 치커리 꽃은 수레국화만큼 곱지만 하루면 시들어 버린다. 꽃송이를 잘라서 물어 띄웠더니 파랗게 꽃봉오리가 열렸다. 유난히 작은 비트 귀엽다며 아이가 컵에 꽂아두. 텃밭을 다녀왔더니 집안이 더 북적해진 기분이다.


 텃밭에 가는 것 만으로 나는 힐링이었다. 아이들은 밭 옆에서 흙놀이를 했고, 산에서 내려오는 노루를 만나 놀라기도 했다. 여름휴가를 거의 텃밭에서 보낸 거나 다름없는 우리 일상 무료한 듯했지만, 가을 텃밭 준비로 다시 활력을 얻은 듯하다.


  가을채소 모종을 받고 심기만 하면 된다. 초보 농부는 반나절 밭 정리를 해서 몸이 뻐근해졌다. 게다가 남은 작물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정리하느라 집에서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피곤한 이유는 따로 있는 듯했다.

착한 텃밭은 이미 김장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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