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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Sep 03. 2021

배추 모종을 보니 속이 터졌다

배추 모종 심기

  텃밭은 아직도 여름 냄새가 남았는지 모기가 많다. 잠깐 잡초를 뽑는데도 모기물어 짜증이 났지만, 사실 기분이 상한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주 가을 채소 모종을 받았다. 배추 모종 15개와 무 모종 12개와 총각무 씨앗봉투였다. 밭마다 이미 퇴비 20 kg가 올려져 있는데 자루가 무척 커서 놀랐다. 편이 삽을 들고 오는 동안, 나는 퇴비 자루를 열였다. 퇴비 냄새는 얼굴을 구기게 했지만 텃밭 작물들에겐 반가운 영양분이 되니 참을만했다. 


 퇴비를 다 섞어야 하나 남겨두고 넣어주어야 하나 고민하는 차에 농장 관리인이 보여 물었다. 비 한포를 모두 섞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모자라듯 하면 더 가져라 가라고 했다. 봄 채소 심을 땐 농장에서 주는 액비가 떨어져 우리 밭엔 한 방울도 주지 못했는데, 이번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 좋았다.


1. 퇴비 섞기

 삽으로 밭의 흙을 모두 깊게 팠다. 뿌리가 잘 내리려면 깊이 있게 파줘야 했다. 특히 무는 뿌리가 크는 채소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흙 위에 퇴비를 넣어 흙과 충분히 섞었다. 그리고 퇴비가 보이지 않게 흙을 위에 뿌렸다.  퇴비를 섞으며 한바탕 삽질을 마쳤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모종 심을 차례가 된 것이다. 한두 시간을 예상하고 갔는데 밭일이 언제 끝날지 까마득했다. 난 모종 심으며 줄  물을  준비했고 남편은 고랑을 만들었다.


2. 모종과 씨앗 심기

  배추가 잘 크려면 종 간격이 중요했다. 고추의 모종이 잘 자라는 것도 모종 간격이 중요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40-50cm 간격이 적당한데 팔꿈치 아래만큼 간격을 두고 배추와 무를 심었다. 모종이 들어갈 자리에 구멍을 내고 물을 다음 심었다. 봄 채소 심을 때 보다 씬 오래 걸렸다. 이렇게  작은 모종이 큰 포기 배추가 된다니  믿어지지 않았지만, 모종을 심으며 '잘 커라!'라고 주문을 걸었다. 배추와 무 모종을 심고 나서 남은 자리에 총각무 씨앗을 심었다. 한 시간이면 될 줄 알았지만, 초보 농사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오랜만에 밭일을 실컷 하고 다음 밭에 갈 날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보냈다. 리서 밭이 보이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바빠졌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록잎이 보여야 할 밭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배추 모종을 보자마자 속이 터졌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밭에 와보지 않았더니 일주일 만에 시든 잡초처럼 배춧잎이 노랗게 변했다. 모종이 눈이 녹은 듯 뭉개져 모종 반이상 잎이 사라졌다. 그나마  무 모종은 두어 개가 시들었지만 나머지는 심을 때 그대로였다.

모종이 녹아내린듯 뭉개져버렸다.  

 심고 하루 이틀 만에 와서 봤어야 했는데 애꿎은 가을장마만 탓할 수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다른 밭을 살펴보니 다른 밭도 상황은 비슷했다. 퇴비가 포대자루에 그대로 있는 밭도 있었고, 모종을 심다 만 밭도 있었다. 분명 종 심는 시기는 늦지 않았는데, 한낮에 내리쬐는 뜨거운 해가 배추를 힘들게 했까? 아니면 퇴비가 제대로 섞이지 않았나? 퇴비를 섞고 며칠 두고 나서 심었어야 했나?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때 건너 밭주인 부부가 나타났다. 그 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 걱정은 하지만 나처럼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그래서 배추 모종이 이상하니 한번 봐달라고 말을 걸었다.


" 아직 괜찮아요. 배추가 힘을 내주는 중이에요. 아무래도 낮에 좀 뜨겁네, 배추가 힘들어서 그래요. 그냥 두면 잘 견딜 거예요. 괜히 잎을 만지지 말고 두세요."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고 가버렸다.


 아무리 봐도 난 안심이 되지 않았다. 깻잎을 뜯으며 '빈 밭이 되면 배추 모종을 사다 다시 심어야 하나?'

' 남은 총각무 씨를 뿌릴까?'

 추를 따려고 보니, 고추 하나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어 반가웠다. 그런데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김장할 생각에 부풀었던 마음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흰꽃이 가득 핀 고추는 언제 달렸는지 새끼손가락만 한 고추들이 주렁주렁 이었다. 배추가 속 터지게 했지만  고추꽃을 보니 고운 생각도 들었다.

 육아를 하는 동안 길렀던 인내심과 기다림에 대한 의연함을 불러와야 했다. 텃밭을 하면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보다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정말 배추가 힘을 내고 있다면 지켜봐 주겠다는 약속을 해주고 싶었다. 좀 더 자주 밭에 와서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벌써 실망은 하지 않기로 했다. 고추와 깻잎이 그랬던 것처럼  먼저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말이다.

베란다에 잘 익은 토마토 열매

  집에 돌아오니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베란다에 토마토가 또 열매가 달려 벌써 익은 것이다. 아이가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왕관을 쓴 것 같다며, 따지 말고 그냥 두자고 다. 요새 텃밭 생각에 베란다 방울토마토가 익어가는 것도 몰랐나 보다. 그러고 보니 배추 모종이 문제가 아니라 속 좁은 내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닐 거야. 충분히 뿌리를 내리려고 잠시 땅 위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걸 내가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결국엔 나를 좋은 쪽으로 믿게 만드는 착한 텃밭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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