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Sep 09. 2021

텃밭에서 벌어진 절도사건

용의자들

  올봄 텃밭에 수상한 흔적이 신경 쓰였다. 비트 뿌리가 자꾸 누가 뽑다가 걸쳐둔 것처럼 바깥으로 반이 뽑혀 있었다. 얼마 뒤엔 비트 두 개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람. 비트 잎이 크지 않아 수확도 해보지 않은 터라 비트 뿌리가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됐다. 흙을 깊게 파고 비트를 다시 심어 주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궁금했다. 범인은 다시 사건 현장에 온다는데 정말 그럴까?


  여름을 앞두고 비 예보가 없는 날이 이어졌다. 밭 바싹 말라갔고, 상추가 가장 먼저 꽃대가 올라와 잎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 잎채소들이 모두 꽃대가 올라오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하루 건너 하루를 물을 주러 다녔다. 밭주인이 있다는 걸 눈치챈 건지 한동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1. 노루를 만나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 마주쳤다. 눈앞에 맨살을 드러낸 엉덩이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 넘어질뻔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입에 무언가를 물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며 사라졌다. 농장 뒤 산에서 내려온 노루였다. 농장 입구 팻말에 노루가 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쓰여 있었지만 직접 만날 줄은 몰랐다.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지만 제주에 노루 출몰지역에서 보던 노루보다 훨씬 큰 놈이었다. 고향에선 노루를 보면 운이 좋다는데, 텃밭에서 만난 노루는 거리가 먼 듯했다.

노루는 옆 밭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이미 우리 밭도 살핀 듯 녀석이 다녀간 흔적은 비트가 알려주었다. 으로 베어 문 자국이 선명했다. 노루에게  입에 맞았는지 물어볼 수 없었지만, 비트의 동그란 뿌리는 맥북에 붙은 사과 모양처럼 보였다. 



2. 달팽이는 계속 열무만 노린다

 사실 노루보다 더 한 절도범은 달팽이 들이었다. 연한 열무 잎을 얼마나 잘 먹는지, 툭하면 열무 잎을 갈아먹고 줄기를 나무젓가락처럼 만들었다. 그러게 먹고 나면 달팽이집만 남겨두고 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열무 한 단은 그냥 뽑아야 했다.

 달팽이를 다시 만난 건 새로 심은  열무 손가락만큼 올라왔을 때였다. 전날 비가 흠뻑 내려 밭엔 물을 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달팽이들이 정신없이 열무잎을 먹고 있었다. 달팽이들을 모조리 생포하고 농장 폐기물을 모아두는 곳에 가장 깊은 곳에 던져 넣었다.


 늘 지나는 옆 아파트 단지에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이 있다. 우리 밭엔 없는 작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작은 밭이지만 도라지 꽃이 예쁘게 피고, 온갖 덩굴 작물이 있었다. 오이, 노각, 호박 덩굴이 먹음직스럽게 자라니 늘 살피게 했다.

 

3. 나쁜 손을 가진 사람도 있다

 갑자기 없팻말이 걸렸다. 텃밭에 절도범이 나타난 모양이다. 아무래도 머리가 검은 (혹은 흰머리가 섞인?) 사람 소행인가 보다. 뭘 얼마나 작물을 갖고 갔는지 밭주인은 참 속이 상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엔 할머니가 고추가 딱 6개 달렸는데 누가 싹 가져갔다 속상해하시는 말을 들었다.


 우리 텃밭에선 사람 아닌 존재들이 텃밭 채소를 훔쳐 먹는데, 이곳 텃밭 작물어느 욕심 많은 사람 꿀꺽하는 듯했다. 수확을 언제 할까 말까 망설이며, 텃밭 오가던 주인 참 황당했 듯했다.

 

 그나저나 '손대지 마시오' 팻말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범인은 꽤 여러 번 손을 댄 듯 하니 말이다.  게다가  텃밭 주변에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워낙 많은 도심이니 범인 잡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날씨는 깨끗했지만 깻잎이 녹병이 들었다

 그동안 건강했던 깻잎 주변에 반점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황토색으로 점을 찍은 듯 깻잎 녹병이 든 잎이 생겼다. 약을 치지 않고 키우니 조심했지만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병이 든 부분을 잘라내고 있지만, 깻잎 꽃이 필 때까지 버텨 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텃밭을 노리는 용의자들이 너무도 많아 다 잡고 혼내주긴 어려울 듯하다. ^^;


 우리 텃밭도 "손대지 마시오. 발견 즉시 현장범으로 형사 처벌할 것입니다."팻말을 달아두면 벌레들이 무서워서 도망갔으면 좋겠다.

이전 15화 배추 모종을 보니 속이 터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