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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Sep 16. 2021

남의 배추가 더 커 보인다

비교하는 마음

 역시 텃밭은 착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배추모종이 모두 죽을 듯했는데, 놀라운 치유력으로 살아났다. 시들했던 무 모종도 기운을 차렸는지 귀를 쫑긋 올린 강아지처럼 귀엽게만 보였다. 배추가 밭에 적응을 하는 동안 고생을 한 듯했다. 뿌리를 내리는 동안 몸살을 앓더니 꼬박 2주일 만에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 모습에 얼마나 고마운지 "배추가 살아났어요!"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싶었다.

떠나버린 줄 알았던 배추가 살아났다

 무와 배추 모종 대부분 살아난 듯했다. 아직 기운 없이 그대로인 배추 모종은 3개 정도였고, 나머지는 손바닥 만하게 랐고 속잎 여러 장 올라왔다.


 바짝 마른 밭에 물조리개로는 충분히 물을 줄 수 없어, 고무 호수를 연결해 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름이 남은 밭에 가을 채소 자리 잡는 데는 물 주기가 중요한 듯 했다.

  에 물 줄 땐 먼저 리가 있는 흙을 충분히 적시고 나서, 비를 뿌리듯 잎사귀 위로 살살 물을 뿌려주었다. 그때마다 배춧잎에 물떨어지 "쏴아"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나 괜찮아요!"라고 배추가 대답하는 듯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오락가락하던 날씨도 얌전해졌고, 아침저녁 늘해져 배추가 좋아하는 온도가 맞진건  톰한 이 느껴졌다.


  시장에서 파는 속이 찬 배추를 손으로 수확할 수 있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커주면 청을 시래기 먹을 수 있을 거란 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뭔가 좀 아쉬웠다. 고추를 따고 나니 수확할 채소가 없었다. 깻잎도 녹병이 번져서 먹을 것이 없었다. 깻잎 대신 하모니카처럼  가 생기고 있으니, 조심스레 들깨 수확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상추 배추 눈치를 보는지 좀처럼 잎이 커지지 않았다. 봄에 수확해서 먹던 잎채소는 이젠 멀어진 듯했다. 아니면 배추처럼 뿌리 내는 것이 쉽지 않 지도 모르겠다.


 분양 밭은 텃밭은 11월 중순이면 정리가 된다고 예고가 있었다. 이제 두어 달 남짓 남은 기간동안 빈틈없이 풀가동 해야 했다. 끝나기 전에 밭은 빈자리 없이 작물들을 심고 싶었다.  

 쪽파 종자를 구해서 텃밭 가장자리에 둘러 심었다. 그리고 빈자리총각무 종자를 심었다. 욕심이 과했는지, 서툰 손은 이 뭉쳐서 올라오게 했다. 자주 속아주며 어린잎은 나물로 먹으면서 실한 총각무를 키워봐야겠다. 

밭은 빈자리가 없다

  봄에 먹었던 얼갈이배추는 속이 차는 것이 아니니 어느 정도 자라면 억새지기 전에 뽑아 먹었다. 오크 잎 상추나 로메인 상추잎을 뜯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인지  김장배추가 자라는 걸 그냥 지켜보는 것이 어색했다. 손바닥만 해지면 뜯어먹던 생각이 자꾸 났다. 배추는 잎채소이긴 하지만 속잎이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을 한다. 가을밭은 수시로 수확하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이제 막 뿌리를 내린 배추가 얼마나 통통해질지 기다려봐야 했다.


 물을 주고 나면 구경 말고 할 일이 없었다. 이 밭 저 밭 구경을 나섰다. 우리 밭 배추보다 두배는 더 큰 밭도 있고, 무청이 팔뚝 길이만 하게 자란 곳도 있었다. 자꾸 다른 밭에 배추가 더 커 보였다. 모종이 무사했지만 뭔가 뒤쳐진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배추가 속이 안차면 '겉절이를 해 먹으면 되지! 쌈채소로 먹으면 되지!' 괜히 마음만 소심해졌다.


동네 화단에도 배추가 큰다.
유치원 텃밭에 크는 배추는 올망졸망 귀엽다.

 그나저나 너무 배추만 신경썼나? 텃밭에 가지 않는데 내 눈엔 배추자꾸 보였다. 동네 화단에 배추 모종을 누가 싶었는지, 벌써 얼굴만 하게 자랐다. 추 사이에 심은 상추도 우리 밭 상추보다 더 잘 자라는 듯 했다.

 마트 가는 길에 동네 유치원은 마당이 훤하게 들어온다. 그 앞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언제 심었는지 텃밭상자에 자란 배추가 너무도 탐스러웠기 때문이다. 고사리 손으로 키운 배추가 내 것보다 훨씬 크고 좋았다.


간절히 바라던 텃밭을 갖게 돼서 신이 났었다. 초보 텃밭 주인이지만, 큰 수고 없이도  밭에서 주는 대로 덥석덥석 잘 받아먹었는데 가을 채소를 심고 나선 '욕심'이 생겼나 보다. 배추는 열심히 속을 채우기 위해 자라고 있는데, 밭주인은 다른 밭이나 기웃 거리며 비교 하고 있었다. 자꾸만 남의 배추가 더 커보이고 부러웠다.


 른 누군가와 비교하  아이들도 싫어 한다.  나 역시 다른 누군가와 비교당하 것이 싫고, 기분이 유쾌하지 않는건 마찬가지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추에게 미안해졌다. 배추 모종이 김장배추가 되기 위해 열심히 크는 동안만이라도, 쓸데없이 비교하마음 멈보기로 했다.

 텃밭이 알려주는 대로 나는 하나씩 배우고 있는 듯 하다.  착한 텃밭 소리도 안하는데, 항상  잘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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