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Oct 17. 2021

배추밭에 이불을 덮어주고 싶다

배추야 얼지 마

 날 좋은 10월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찬 공기가 사나웠다. 루 만에 찬바람이 쌩쌩 불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베란다에 얼갈이배추 크고 있는데, 다행히 추워진 기에도 멀쩡 했다. 문제는 텃밭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배추는  속이 차고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묶어 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꼭 묶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11월 초가  되기 전에 묶어주어야지 했는데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텃밭에 배추가 얼어 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다. 진작에 묶어줄걸 후회가 되었다.


  배추는 속이 차곡차곡 차고 있는데, 배추벌레는 잊을 만하면 나왔다. 남들 하는 약을 뿌리던 한사를 쳤어야 하는데 고집을 부렸나 싶었다. 그래도 날씨가 추워질수록 벌레들도 사라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 배추를 묶지 않고 그냥 두고 있었다. 배추 속이 얼어 버릴 까 봐 서둘러 밭에 가야 했다.  추 밭에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1. 비닐 씌우기

 밭마다 비가림처럼 비닐을 씌운 밭이 있었다. 적어도 강하게 흔드는 바람 정도는 막아주는 듯 보였다. 특히 가을 상추는 일조량과 보온이 필요하다. 비닐을 덮는 방법은 작물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잘 크게 하는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런데 텃밭에서 비닐은 그다지 단단하게 관리하기 어렵다. 다친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놓듯 잠깐 덮어두는 일 같아 보였다. 신기하게도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든 밭엔 상추가 꽃처럼 잘 피어났다.


2. 한냉사 씌우기

 모기장처럼 밭에 설치하는 한냉사도 있다. 모종 주변에 활대를 꽂아 한냉사는 씌운다. 한사를 씌운 밭이 있었는데 그 밭의 열무는 정말 슈퍼급으로 자랐다. 적당히 보온도 되고 통풍도 되니 작물이 좋은 조건에서 발육을 한다.  한냉사 안에 자라는 열무는  새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처럼 알코올로 소독된 열무 같이 보였다. ^^; 벌레도 없지만 작물이 자라는 데 강한 비바람 태양을 적당히 걸러줘서인지  성장 속도도 빨랐다. 그런데 활대 높이를 넉넉하게 하지 않으면 열무잎이 꺾일 수 있다. 랭사를 씌웠다면 우리 밭 열무도 달팽이가 포식하는 일은 없었을 듯싶다.

  배추와 무도 한냉사를 씌우는데 조류나 나방류, 배추나비도 얼씬하지 못하게 한다. 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물을 위에서 뿌려야 하기 때문에 약하지 않고 튼튼한 것을 골라야 하는데, 요즘 시판되는 한사는 성능이 좋은 편이다.

3. 있는 그대로

 텃밭을 한 이유는 자연과 만나고 싶어서였다. 한사를 덮은 밭을 보며 내심 따라 해볼까 싶기도 했다. 갑자기 날이 추워지니  지금이라도 한사를 사서 씌워주고 싶었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밭을 가꾸는 것이 이번 텃밭을 시작할 때 다짐이었다. 몸으로 부딪쳐 봐야 알듯 직접 해봐야 내 것이 될 것 같았다. 고수들의 비법도 커닝하면서 소신껏 하고 싶었다. 벌레를 잡는 것이 그렇게 번거롭지는 않았다. 약을 치는 것보다는 배추를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만 먹자고 배추를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감처럼 어떤 배추는 좀 많이 벌레들에게 양보하 기분도 들었다. ^^;


  갑자기 추워지다니 아직 한참 더 자랄 배추가 얼어버릴까 걱정이었다. 달려간 밭에 배추는 추운 날씨가 더 맘에 드나 보다. 쫑긋 귀를 세워 주시하는 강아지처럼 나를 기다린 듯 보였다. 벌레들은 더 보이지 않았다. 배추를 하나하나 묶으면서 또 하나를 배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된다. 날씨는 점점 추워질 것이고, 배추는 그런 추위를 겪어내는 DNA를 타고났다. 가을에 쳐들어오는 한파는 배춧잎을 더 탱탱하게 겹겹이 채우는 듯했다. 착한 텃밭엔 지금 가장 건강하고 단단한 배추가 크고 있다.

 시린 손을 감추며 나도 배추처럼 옷깃을 더 당겼다.



이전 18화 배추벌레는 나만 좋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