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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Oct 14. 2021

고추꽃은 예쁘고 들깨꽃은 귀여워

텃밭의 꽃들

  출장 가듯 가방쌌다. 장갑, 장화, 비닐봉지, 쌀뜨물, 가위, 마실 물 한 통을 다. 소요시간은 3시간 내외, 행선지는 텃밭이다. 두 집 살림이 이런 걸까? 주말 TV 삼매경 중인 가족들을 남겨두고, 텃밭에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에서 잘 크고 있 무와 배추를 보면 마냥 웃음이 난다. 10월 텃밭은 햇볕이 따사롭고, 시원한 바람도 살랑 거리니 모든 것이 순조.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려 날씨도 도와주는 듯 느껴졌다. 렁했던 밭은 제 김장채소들이 꽉 채워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1. 들 꽃은 엽다

 기다린 보람이 이런 건가 보다. 잎이 나던 가지마다 옥수수처럼 길어지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작은 흰꽃이 꽃대마다 촘촘하게 피었다. 꽃이 피고 있으니 깻잎 수확은  끝이 났지만, 들깨 병이 더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깻잎을 실컷 먹었는데 들깨까지 수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착한 텃밭이 주는 기대감은 늘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들깨는 꽃향기도 깻잎 향이었다. 작지만 자신의 개성이 확실한 꽃이었다. 꽃이 풍기는 향기에 나비와 벌들이 부지런히 찾아와 주니 정말 들깨 열매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들깨 꽃은 하얗게 피어난다
녹병이 생겼지만 더 심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2. 고추은 예쁘다

 에 앉아 마스크를 내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일상의 답답 기분도 내려놓고,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목마름 뒤에 시원한 생수를 충분히 마시듯 상쾌해지니 머릿속도 맑아졌다. 먼지 없는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은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다. 효자노릇을 하는 고추는 오늘도 주렁주렁 꽃이 만발했다. 래를 내려다보는 고추꽃이 신기해서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 걸린 꽃송이가 예쁘고 청하 했다. 이슬 맺힌 꽃잎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꽃보다도 깨끗하고 순수다. 가만히 앉아 고추꽃을 보면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고추꽃을 보면 시간이 멈춘듯 고요해진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고추꽃은 눈이 부시다

3. 김장채소 밭은 틈이 없다

 쪽파가 올라오기 시작하니 배춧잎이 늘어졌다. 아직은 날이 따뜻하지만 밭을 크게 차지하는 잎을 좀 묶어줘야 할 듯했다. 무청은 줄기가 더 많아졌는데, 쑥갓 를 모두 덮어버렸다. 막이를 할 수 도 없고, 충분히 모종 거리를 두고 심었지만 작물을 심을 때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금치 씨를 심을 때마다  비가 와서 서너 번 만에 겨우 싹이 올라왔다. 어렵게 싹이 올라왔지만, 배추 잎이 덮어버리면 맛못 볼 모른다. 아쉽게도 시금치를 옮겨줄 만한 자리 없다. 지금 텃밭은 완전히 만석이 때문이다.

시금치와 쪽파는 배추가 자라니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
당근 하나만 겨우 솟아났다. 쑥갓은 무청이 늘어져서 찾기도 어렵다

 가을 상추는 아무래도 봄 잎채소만큼 자라주지 않았다. 상추는 봄에 더 열심히 키우는 걸로 념했다. 문제는 당근이다. 7월 말부터 파종을 했지만 8월 말이 되어서야 싹이 몇 개 올라왔다. 제대로 자란 건 서너 개가 였다. 가을 당근을 잘 키워 겨울 내내 아껴먹으려는 계획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주인이 욕심을 너무 냈는지 좁아터진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에게 미안했다.


 좋은 시간은 좀 천천히 지나면 좋으련만, 다음 달이면 끝날 텃밭 농부 일상이 벌써 아쉬워진다.

  텃밭에 핀 꽃은 길가의 꽃처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만큼 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착한 텃밭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고추꽃은 예쁘고, 들깨 꽃은 귀여웠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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