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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Oct 02. 2021

배추벌레는 나만 좋아해

배추벌레

  텃밭 가는 길은 설렌다. 배추가 날개 단 듯 비상 중이기 때문이다.  배추와 무 모두 잎이 쫑긋 사선으로 펼쳐진 모습은 무엇보다 신기했다. 무모 종도 배춧잎 길이로 자랐고 흙 위로 솟아나듯 흰색 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뜸해져서 인지 추밭 물 주기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다시 찾은  밭은 비가 오지도 않는데 어디선가 물줄기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농장 주인이 매일 돌리는 스프링클러였다. 안 그래도 배추가 갈 때마다 쑥쑥 자란 듯했는데, 배추와 무를 지키는 우렁 각시는 따로 있었다. 2-3일에 한번 갔지만, 모두 우렁 각시 덕이었다.


  봄 텃밭은 알록달록했다면, 가을 텃밭은 빽빽해진 무와 배추가 대부분이라 정돈된 모습이다. 든 밭의 배추는 거의 비슷비슷하게 자라고 있지만, 배춧잎이 파릇한 밭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 우리 텃밭 배추 유난히 예쁜 초록색인 듯 사랑스럽게 보였다. 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희거나, 노르스름하거나, 연초록이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알이거나, 작은 꿈틀이와 손가락만 꿈틀이까지 배추 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과 애벌레는 지치지 않고 생겼다. 

배추 모종과 무 모종은 건강합니다

  인터넷을 뒤지니 배추에 벌레가 생기면 잡아어야 하는데, 심해지면  약을 뿌려야 한다고 했다. 미리 약을 뿌려 벌레가 없게 하는 법도 있다고 하지만 잡는 편이 확실해 보였다. 내심 가능하면 텃밭 작물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무젓가락이나 스푼을 챙겨갔다. 아직  상태면 배추가 좀 뜯겨도 모두 긁어냈다.  벌레들은 장갑을 낀 채 꿈틀거리는 것들을 끝까지 찾았다. 가만히 기다리면 안쪽에 있던 아이들이 기어 나왔다. 속이 노랗게 차기도 전인데 애벌레 똥으로 가득한 배추 속도 있었다. 다녀간 지 이틀도 안됐는데 언제 사달이 난 건지 답답했다.


  가을 텃밭은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딱 반반었다. 배추가 잘 자라 좋았지만 벌레 잡기는 끔찍했다. 깻잎 녹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추 속을 들여다볼 때마다 애벌레의 흔적이 없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나마 배추 몇 개만 빼고는 모두 무사했다. 아직 두 달은 키워야 하는데 언제까지 보초를 서야 할지 모르겠다.  손가락만 한 애벌레는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징그러웠다.  벌레들 때문에  배추 속잎을 살펴보는 일은 너무도 중요했다. 밭주인은 배춧잎 맛도 안 봤는데 꿈틀이 먹보들이 다 먹어 버릴 기세다.


  벌레를 잡고 물을 주고 있는데 건너편 밭엔 시끄럽게 뭔가 하는 듯했다.

"여기 여기" 

"진짜 죽네"

 칙칙 소리를 내며 아들이 가리키는 대로 엄마는 약을 뿌렸다. 그렇게 배추에 뿌리고 나면 벌레가 기어 나오고 서서히 죽는 듯했다. 나도 쉽게 벌레를 잡아 볼까 싶기도 했지만, 잡은 애벌레는 모두 공터 풀숲에 버리는데, 죽은 벌레 처리도 징그럽기 마찬가지였다.

 풍성하게 자란 배추 속만 골라 벌레가 생기니 나도 오기가 생겼다. 밭을 가는 길에 '제발 먹보 벌레들이 우리 밭 배추 오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주문을 외웠다. 벌레가 심해지면 일일이 잡아주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겠지만, 눈을 질끈 감고 보이는 족족 처리하고 있.

밭 가장자리에 심은 쪽파도 촘촘해지고 있다

 나마 밭 가장자리에 심은 쪽파는 나를 서운하지 않게 해주고 있다. 심을 때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파김치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빨리 추워져서 배추벌레를 좀 그만 보고 싶다. 그런데 벌레들이 날 놀리는 걸까?

 남편이랑 텃밭 가는 날은 보이지 않고, 꼭 혼자 가는 날 꼼 찌락 거리며 나타다. 남편에게 벌레 잡은 무용담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배추 속 먹보 벌레를 찾아 처리하는 일은 오직 나만의 고통이다.


 남편은 밭에 물 주고 배추를 슬쩍 보더니 고추를 따러 가버렸다. 우리 밭의 히트작 고추는 아직도 새롭게 달린 꽃과 열매가 딱 반반이다. 고춧잎을 먹으려고 어린잎을 여러 번 뜯었지만, 고추는 주렁주렁 달린다. 고추는 남편에게 맡기고 난 배추 속을 살폈다. 그나저나  먹보들은 다 어디 간 거야? 남편이 온 걸 안 배추벌레는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배추벌레는 나만 좋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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