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피난처였다

나무 아래의 시간

by 무쌍

그 맑고 푸른 바람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계속 바깥은 뿌연 먼지가 떠 있다. 가을이 막 시작했을 땐 기대감이 컸다. 부지런히 뭔가를 했다고 믿었는데, 앉은자리만 바꾼 건가? 좁은 상을 펴고 바닥에서 글을 쓰다가, 식탁의자에 앉아 쓰게 된 정도의 변화만 있었던 것 같다. 은 여전히 말을 거는데 받아 적는 일이 더디기만 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언지 찾아보려고 기웃거리던 시간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듯 출발점과 도착점이 있다면 좋겠지만, 눈을 아무리 크게 떠봐도 달릴 곳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는 그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위치는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 늘 궁금해했다.


얼마 전 15층 아파트 높이 로우 주로 쏘아 올린 누리호가 우주로 멀어져 가는 장면을 봤다. 상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는 간을 숨죽이며 보게 했다. 높게 날아올라 우주로 나가는 모습을 따라 멀리 별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지구를 떠난 누리호는 우주로 나가면 지구와 다른 시간이 흐를 것이다. 우주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읽기였다. 그동안 나는 어른이 되면, 나이가 들면, 사회적인 위치가 생기면, 따위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봐도 내 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차에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우리가 내면의 성찰과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사소한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전두엽이 매우 거대해진 덕분에 우리는 달에 착륙할 수 있었고 블랙홀을 발견했으며, 무당벌레의 사촌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 자신에 대해 충분히 밝혀내지 못했다.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그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우리를 지금에 이끌었지만, 사실 감정들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고 했다. 삶은 감정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불과하며, 그 외침은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때로는 고통이 되고 때론 노래가 된다고 했다. 그 노래가 시간이고, 노래의 시작이 시간의 시작이라고 했다.


시계를 볼 새도 없이 하루 종일 집안을 우왕좌왕 다녔더니, 산책을 나설 틈이 간절했다. 소동을 피해 찾아갈 피난처가 필요하듯 휴식이 그리웠다.

나무들이 겨울을 앞당겨 불러오려는 듯, 쉬지 않고 잎을 떨구고 있었다. 낙엽 더미가 곳곳에 쌓인 사이로 유독 반짝이며 나를 부르는 나무가 보였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카메라 액정 안으로 떨어질 듯 흔들리는 나뭇잎이 아름다웠다. 기다렸던 나의 시간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나무 아래에서 내 감성을 깨우고 시간을 붙잡았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멈춰 서니 모든 것이 편안해진 듯했다.

지는 해가 비추는대로 잎을 투명하게 뚫고 나오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장면을 봤다. 카를로 로벨리의 말을 빌리자면 그 휴식이 바로 '시간'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다정하다. 나를 꼭 감싸안고 토닥토닥 사연을 듣는다. 오늘 내게 온 자연의 부름은 나무 그늘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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